brunch

립스틱으로 예의를 지킨다.

립스틱으로 생기를 채운다.

by 글쓰엄

립스틱을 바르지 않은 얼굴은 아파 보인다. 양치 후 거울을 보거나 음식을 먹고 립스틱이 없어진 상태의 입술을 보면 더 그렇다. 어느 순간 옅어지는 입술색은 얼굴에 생기를 잃고 연식을 표시내니 의무적인 화장과 붉은 립스틱은 필수가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술색이 옅어지는 것은 노화로 인한 혈액순환의 저하 때문이다. 입술에 수분과 윤기가 감소하면 입술이 건조해지면서 색이 더 없어 보이는데 이 모든 것이 혈관세포의 노후화로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그렇단다. 입술이 옅어지는 것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라니 서글픈 색깔이다.


화장을 한다는 건 외출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자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가면을 쓰는 행동이다. 예뻐 보이기 위해 화장하는 나이는 지났고 얼굴에 생기만 표시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메이크업을 위한 도구는 없어진 지 오래다. 바를수록 눈가의 주름을 돋보이게 하는 아이섀도도 마찬가지라 색깔로 생기를 채울 수 있는 건 립스틱밖에 없다. 입술도 집에서는 생략인데 일터에선 그럴 수 없으니 챙겨 발라야 한다. 이제 립스틱을 바른다는 것은 변장을 넘어 나 살아있어요라는 표시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립스틱에 관심이 가면서 하나씩 사게 된다. 립스틱도 진하고 매트한 걸 바르면 입술이 트니 촉촉하면서도 색이 오래 남는 걸 고른다. 하지만 먹는 거 앞에 장사 없는 립스틱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오래 지속되는 립스틱 위에 보습을 위한 립밤을 덧발라도 마찬가지니 생각나는 데로 바를 수밖에 없지만 미련이 남는다.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립스틱을 찾고 싶지만 개수만 늘어나고 있으니 시간만 아까워진다. 어쩔 수 없이 립밤은 립밤대로 립스틱은 립스틱대로 구매해 매장 연필꽂이통 앞에 놓아두고 있다. 입술에 색을 잃어 아파 보이는 얼굴이 되기 전 바를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말하지 않아도 아따씨와 나는 서로의 입술을 챙겨주며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말해준다. 손님이 놀라지 않도록 얼굴에 생기를 주고 살아 있음을 표시내기 위해서 말이다. 매일 입술을 체크해 주다 입술에 문신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아픈 건 싫다. 그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립스틱을 두고 입술을 캔버스 삼아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


매일 서로에게 해 주는 말.

"아따씨야! 입술이 허예요. 립스틱 좀 바르세요."

"과장님! 입술이 허예요. 예의 좀 지키시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연해지는 입술

시간의 지나감은 피할 수 없네요

시간의 흔적을 채워주는 립스틱


생각은 보여지기 전에 시간이 있지만

얼굴은 보이는 것이니 시간이 없네요


보이는 순간이 괜찮아 보이도록

봐주는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보여진 자신이 놀라지 않도록

립스틱으로 신경 쓰고 있어요


입술을 채우고 얼굴을 두드린다는 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배려와 예의


얼굴을 도화지 삼고

입술을 캔버스 삼아

색칠놀이 하면서

예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