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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펜, 하얀 중성펜

검은색 종이에 쓰는 흰색펜

by 글쓰엄

흰색종이 위엔 비밀글자

검정종이 위엔 흰색글자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존재의 선명함이 드러난다


일반 노트에 흰색펜이라니 어이가 없다가도

검정 노트엔 흰색펜만이 유일한 표시가 된다


흰색은 흑색을 보여주고

흑색은 흰색을 보여주니

서로를 돋보이게 해 준다


어둡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다

진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다


생각은 같아도

색깔이 다르면

표현이 다르다


어떤 바탕이냐에 따라

써지는 손길이 다르니

표현된 그림이 다르다


끄적대며 돋보이는 줄이 어울린다

서로에게 다른 색깔에 눈길이 간다

서로에게 다른 색깔이 이해가 된다






문구점에서 일하면 많은 펜을 알게 된다. 그중에 신박했던 펜은 흰색 중성펜이었다. 볼펜의 진뜩한 느낌보다 가벼운 수분기가 느껴지는 중성펜은 그 종류가 많았지만 색깔이 신기했다. 흰색 노트에 흰색 펜이라니 이게 왜 만들어졌는가 싶었지만 검은색 노트가 있다는 걸 알고 흰색 펜을 이해하게 됐다.


흰색 펜을 검은색 노트에 쓰게 되면 흰색의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물론 흰색은 다른 색 바탕에도 잘 드러나지만 유독 검은색에서 만큼은 존재가 강렬해진다. 그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 몰랐던 사실을 문구점에 일하면서 알게 되다니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알아 간다는 것.

그것이 볼펜일지라도 머리에 좋은 생각을 먹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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