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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실이 Jan 09. 2024

결혼반대 문제가 아니라 그 집이 이상한 거야.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희생양인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연애에 미치는 영향.

C의 부모님과 나눌 대화들을 글로 쓰기 전에 나르시시스트 성격장애와 가족관계 그리고 대대로 물리는 사람의 바뀌지 않는 성향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나르시시스트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이익을 위한 착취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저 길을 걷다가 지나치는 사람이거나 나의 삶에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이 이런 유형일 경우 우리는 타격받지 않지만 직장동료 또는 상사, 연인, 가족일 때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다. 세상 살면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고통과 시련을 겪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거나 대안이 있는 문제점들이기에 상황을 좋게 바꾸거나 견뎌낼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뚜렷한 답이 없다. 아니, 어쩌면 답을 찾지 않으려고 하는 게 더 마음 편하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대로 마주한 첫 번째 이별기간 동안 난 뭐에 홀린 사람처럼 심리에 대한 영상들과 글들을 찾아봤다. 그러다 내 눈길을 끈 내용이 바로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주제였다. 이미 이 기간엔 C의 부모님에게서 험한 말은 다 들었던 터라 왜 사회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말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커서 검색도 해보고 내린 나만의 결론은 너무 뒤틀려진 사고방식과 가족 간의 애착을 갖고 있는 분들 같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문화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문화에서 배울 점은 공동체를 중요시 생각하며 예의범절 등등 유교사상에서 따온 좋은 점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단점은 서로에게서 너무 많은 희생을 바란다는 것이다. 가족인데 이해해야지, 가족인데 용서해야지, 가족이라면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등등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다.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가장으로 추구하는 서양문화는 절대로 이런 동양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오로지 내가 겪은 일들과 내 짧은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된 이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 대해서 보단 그 자식들이 겪는 영향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1. 골든차일드 (golden child), 스케이프고트 (scapegoat), 플라잉멍키 (flying monkey).


지금 60대이신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자식들을 많이 낳는 게 좋은 거라고 여겼던 때였다. 물론 나는 외동이지만 대부분 주변사람들은 형제가 한 명이 더 있거나 또는 더 많은 대가족인 친구들도 많다. 앞에 세 가지의 자식이 맡게 되는 '역할'은 외동이어도 적용될 수 있지만 형제가 많을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골든차일드는 말 그대로 집안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이이다. 대부분 남자아이 또는 장남, 또는 딸만 줄줄이 있다가 생긴 막내아들등 부모의 모든 기대를 받고 무한 서포트를 받는 아이이다. 내 경우에 적용해 보자면 C는 골든차일드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에게 골든차일드는 자신들의 분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겪어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이 아이가 살아야 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이 아이를 통해서 채우려 한다. 콩쥐팥쥐로 예를 들자면 팥쥐가 제대로 된 골든차일드이다. 가장 애정하고 편애하며 아끼는 아이이며 다른 자식들에겐 많은 핍박과 핀잔을 줘도 골든차일드에게만큼은 무한한 이해심과 격려를 준다. C는 단 한 번도 그의 어머니에게서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셨다. 이야기가 조금 새는 것 같지만 그의 아버지 또한 골든차일드이셨기에 C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장 번듯한 장남이길 바라셨고 어디다 내세워도 우리를 빛내줄 존재이길 바라셨던 같다. C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결정을 하는 게 익숙했기에 자신이 독립적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봤을 땐 골든차일드였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께서 그가 내리는 결정이 마음에 썩 들진 않더라도 좋게 넘어가주시거나 신경을 조금 덜 쓰는 방면으로 우회를 하셨기 때문에 이 "결혼상대"의 문제가 오기 전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 거다. 실제로 C는 그의 아버지를 굉장히 존경했고 어머니 또한 자식들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셨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으로 스케이프고트는 최대 희생자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태어난 순서 또한 상관없이 가장 정서적으로 발달되고 섬세하며 감정적인 아이다. 바로 C의 남동생이다. 그는 실제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며 호기심이 많아 다방면으로 시도를 해보고 싶어 하고 또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와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들을 흥미로웠고 뭔가 모험가의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오면서 그의 부모님과, 특히 아버지, 잦은 마찰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가 새로 도전해보고자 했던 일에 대해서 그의 부모님은 그냥 한우물만 파지 자꾸 다른 쪽으로 새려고 하냐, 그렇게 해봤자 도움 될 거 하나 없으니 우리말 들어라 하는 식의 대화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남동생은 좀 더 서양적인 마인드여서 그런지 그의 부모님과 대화할 때 토론하기를 바랐지만 그의 부모님은 어디 자식이 함부로 부모와 토론을 하려는가- 자식은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셨단다.


일화를 들자면 C의 어머니는 굉장히 불같은 분이시다. 충동적이시며 일시적으로 터져 나오는 화를 컨트롤하기 어려우신 분이기에 화를 키우는 트리거가 작동되면 0에서 100으로 가신다. 결혼얘기가 오고 갈 때쯤 C를 통해서 들은 어린 시절 일화가 있었는데 C와 남동생이 그 당시 유행하던 게임기를 가지고 놀다가 어머니께서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려 몇 번을 불렀는데도 대답하지 않자 어머니께서 화를 못 참으시고 게임이기를 그 앞에서 부시고 뺨을 때리셨는데 남동생이 시간이 조금 흘러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보니 고막이 터졌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의사는 놀라서 혹시 누구한테 맞았니? 친구들이 때렸니?라는 질문에 남동생은 어머니가 화가 나셔서 그랬다고 하니 의사분께서 당혹스러워하며 어머니가 많이 화가 나셨나 보구나... 라며 얼버무리셨다고. 그래서 그는 지금 한쪽귀에는 인공고막이 있다. 인공고막이 한번 더 터지면 평생 그 귀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고 하니 그 일이 얼마나 그에게는 충격적이었을까? 성인이 되어서도 그가 계획한 일을 실행하려 할 때 그 계획이 부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부모님은 강경하게 반대하셨지만 앞서 얘기했듯 C보다는 더 서양적인 마인드가 강한 남동생은 항상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대 중후반이 되는 아들을 때리고 그 이후 남동생 또한 부모님과의 관계회복에 대해서 포기했다. "누나,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잖아요. 내가 아무리 관계를 회복하려고 화해하려고 해 봐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되듯이 그냥 저도 이런 상태로 놔두고 있어요."라고 털어놨다.


플라잉멍키는 그저 평화를 추구하는 역할이다. 좋게 말하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갈등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는 아이이다. 흔히 여기저기 붙어 서로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엔 중립을 지키거나 발뺌을 하며 그 상황에 연관되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C의 가족 중엔 여동생이 그 역할을 맡았다. 자기주장 없이 그저 편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며 별다른 고생이나 실패의 경험을 겪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가장 좋은 자식은 이 유형의 자식인 것 같다. 특히 엄마와 딸일 경우엔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아이이기에 내 생각을 다 털어놓고 조종할 수도 있고 내 편을 들지 않으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서 그 상황을 못 견디게 만들면 결국 내 편에 서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악이용 할 수도 있고. 얼마나 쉬운 존재인가? 사실 그의 여동생은 어머니와 가장 가까웠으며 (모든 모녀관계가 그렇듯이) 나이는 먹지만 안의 내면은 성장하지 않은 채로 그저 10대의 아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2. 내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건 나를 배신하는 거야!


자식의 입장으로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일까 떠올렸을 때 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이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정말 막돼먹은 자식이 아닌 이상 어느 자식이 부모에게 당당하게,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이렇게 키워줘."라고 요구하는가? 자신들의 소망으로 뜻을 합해서 아이란 존재를 만들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독립된 성인으로 양육하는 게 모든 부모들의 가장 기본 역할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라마다 성인이 되는 만 나이가 다르지만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필수로 해야 하는 역할인데 미성년의 아이를 올바른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 자신들의 희생을 가지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을 하는 건 욕심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자녀들을 키워가면서 자녀들이 성취를 해낼 때 자신들의 자존감도 채우고 체면도 챙겼으면서 자식이 어느 하나 자신의 뜻대로 해보겠다는 것에 심보가 틀려 죄책감 유발을 하는 건 정말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 사람만이 하는 일이다. 99번을 잘해줘도 1번 잘못하면 잘못한 것에 생각이 머물러 99번 잘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일반 부모와는 다르게 더욱 이 심리가 강한 것 같다. 내 자녀는 나의 분신이기 때문에 나의 체면을 더더욱 살려줘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지 않으면 강한 배신감과 쓸모가 없다고 느껴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오게 된다. 자녀를 트로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내 통제안에 다시 머물게 하려면 그 어느 수단도 가리지 않고, 그게 골든차일드일지라도, 모든 혼란과 폭력성과 공격을 다해 자녀들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항복하게 만들 때까지 괴롭힌다. C의 같은 경우 가장 모든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단 한번 선택한 1번의 '잘못'때문에 그는 그의 부모님에게서 버림받았고 내쳐졌다.


3. 부부중심이 아닌 집안의 환경은 지옥이다.


많은 부모님들은 부부중심이 아닌 자식중심의 삶을 살아오셨다. 물론 그 덕분에 자식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인 지지를 받으며 편하게 살고 있기에 감사해야 할 부분인 건 맞다. 하지만 자식이 중심이고 자식이란 존재가 우리 가족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자식이 떠나가거나 그럴 눈치이면 온 세상이 무너지듯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 집안이 무너진다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이다. 대부분 내 나이 또래 친구들도 많이 공감할 부분인 것 같다. 이런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세대는 자식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잘 챙길 줄도 알고 남편과 아내를 서로 위해주려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C의 부모님은 주말부부셨다. 아버님께선 가르치는 대학교를 위해 그 근처 지역에서 생활하셨고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어머님이랑 세 자녀는 대도시에서 지냈다. 어머님은 전업주부 셨기에 자식들을 중심으로 삶을 사셨고 특히 학구열이 높으셔서 자식들에게 다양한 경험들을 쌓게 하셨는데 C가 가장 그런 혜택을 많이 받았다. 남자 구성원이 더 많은 가족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그의 가족 분위기는 화목하게 잘 지내지만 정서적인 대화나 따뜻한 위로보다는 표면적인 이야기, 실용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세 자녀 모두 다 대학교를 미국에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애정표현이나 (딸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걱정하지 않고 굉장히 쿨해보이는 (?) 가족인 것 같았다. 자식들이 다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의 삶을 생활하니 조금씩 부모님께선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시긴 하셨지만 C는 돌이켜보면 자신의 부모님이 사랑보다는 그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신 분들이라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아닌 성과를 잘 내는 가족으로 어겼다고 한다.


가끔 아이들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아버님께서 어머님에게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지라며 핀잔을 주신적도 몇 번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보면 스케이프고트나 플라잉멍키인 자녀들이 조금 실망감을 주더라도 이미 그런 경험치가 있으니 불같이 화를 내더라도 어느 정도는 넘어가는데 자신들이 거의 신적으로 섬기던 골든차일드가 자신들의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두 분 다 자신들의 존재성을 잃어버리신 마냥 행동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말들 중에 하나는 네가 뭔데 왜 자신들에게서 아들을 뺏어가냐라고 하셨던 그 말이다. 부부중심이 아닌 가족은 자식들을 옭아매기 바쁠 뿐이고 절대로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구속하고 싶어 한다. 이런 자식들은 존중이나 자유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4. 사람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


C를 만나면서 느낀 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그의 동생들의 연애사는 모르지만 C의 연애사는 대충 이러했다. 여러 번의 연애경험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기간에 끝났거나 장기연애를 했더라도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바람, 환승 등등).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굉장히 다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그리고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지난 연애사를 문득문득 들을 때마다 느낀 건 이 남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애정이 깊어지지 않으면 상대방의 단점을 더욱더 찾으려 하고 보는구나라는 것이었다. 또는 자신이 좋아하진 않더라도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해 주기 때문에 그 정도의 관심이나 애정이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게 연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애정은 없었지만 연애를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 우리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처음 6개월 동안엔 그가 나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고 정말 많은 것을 맞춰주려 노력했다. 많은 연인들이 그렇듯 약간의 권태감도 오고 편해지다 보면 소홀 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연락이나 데이트 등등 연애의 질은 오래도록 유지가 됐었다. 하지만 그의 빈번한 단기연애에서 드러났던 문제가 우리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는 갈등을 정말 싫어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했으며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심각하게 흘러가거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끼면 자신이 말을 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이상 자꾸 상황을 회피했다.


내 판단하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C는 그의 부모님에게서 물려받고 또 자라면서 봐온 것도 있겠지만, 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기대를 갖지도 않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부터 생긴 것 같다. C의 입장에선 이게 가장 편한 연애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별 문제나 갈등의 상황이 없으면 어느 누구나 연애는 꽃밭이 아닐 텐가? 사람이 연애를 하는 이유는 본능적인 욕구들을 채우는 거 기도 하지만 연애를 떠올릴 때 핑크빛이라고 하지 회색빛이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연애에 문제가 생겨 타협을 하고 조율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연애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고 조금의 방향은 틀어질 수 있지만 극심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C에겐 이런 연애관이 가장 합리적인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상대방 입장이었던 나는 사랑을 수치화시키고 계산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에 어떻게 숫자를 매기고 내가 얻는 것, 이득을 보는 것, 또 내가 손해 보는 것을 다 따지기 시작한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더 속 편한 길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사랑을 주고 표현하는 그를 보면 가끔은 어디까지가 이 남자의 진솔한 마음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한결같고 상대를 위해 하나라도 더 배려해 주고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에겐 나의 사랑은 부담스럽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라 느끼진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꼭 많은 나르시시스트 부모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다 회피형은 아니지만 대부분 불안정 애착유형을 갖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내가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은, "공실이는 어떻게 사랑에 대해서 늘 확신이 있어?"였다.

그의 질문에 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내 마음속 깊이 들여다보면 너무나 알기 쉬운 것인데?"라고 답하면 그는 늘 "사랑은 너무 어려워."였다. 그의 성격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그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는지가 그에게 정서적으로 대인관계 그리고 밀착관계를 맺는 거에 발달하지 못한 게 그의 부모님의 책임인 것 같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 영재교육 또 사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이 아이가 인격적으로, 정서적으로 온전한 아이인지, 그래서 나중에 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때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제대로 가르치고 객관화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C의 집은 풍비박산이다. 두 아들들은 부모와 연락을 끊고 교류를 아예 하지 않고 딸만이 소통을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인지 자꾸 그들에게 연락을 넣고 다시 관계개선을 하려고 한다. 이거야 말로 끔찍한 결말 아닌가? 이것을 위해 자식들이 하고자 하는것을 반대한건가?


도대체 누가 이긴 싸움이었던걸까. 아무도 승자가 아니었다. 상처만 가득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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