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향한 마음을 다듬는 시간

큰 고통 이후 처음 운을 마주하기 위한 내적 변화


그냥 막연하게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긍정적인 흐름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어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좋아진다는것도 긍정적인 자세로 움직일 때나 해당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고인 물이 되어 썩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운을 향한 마음도 다듬고 꾸준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준비하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 시절 나는 피폐해진 상태로, 힘을 내서 일어서기조차 버거웠습니다. 감정이 극에 달해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참 많더라고요. 나에게 희망이란 너무 먼 일이라 생각했어요. “이제 어떡하지?”라는 물음표에서 뱅뱅 돌게 되니 답을 얻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의식 속의 긍정 에너지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나 봅니다.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쳐 봤자,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더라고요. 일거리를 계속 미루면 그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나중에 산더미같이 쌓여 한꺼번에 해내려다가 큰 몸살이 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다름 아닌 현재 어려워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운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큰 역풍이 지나고 난 뒤, 비록 상황은 말도 안 되게 안 좋아졌지만,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되는 그 순간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운은 삶의 장애물 앞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는 내적 힘을 시험하고 길러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요.


그러한 진리를 알게 된 후부터는 천천히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달라진 건, 과거의 사건을 자꾸 끄집어내어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 어떡하지?"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불속에서 뒤척이거나 잡다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먼저 몸부터 움직였어요. 입맛이 없어 거의 먹지 못해 기력이 쇠약해졌지만, 그래도 정신력으로 하루의 시작을 열어 나갔습니다. 생수 한 컵을 천천히 마시며, 몸에도 정화의 의미와 필요성을 조용히 일깨워주었고요. 집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밤새 쌓여 있던 묵은 감정들까지 내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답니다.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어수선했던 마음의 흐름을 부드럽게 다듬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어떠한 상황이든 돌이킬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삶이 잘 풀릴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내 선택에 의한 것임을 의식하며, 누구도 원망하거나 운을 탓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평안해지는 길인 것 같아요.


그렇게 받아들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느새 운에 맞서지 않고 그 흐름에 향기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면 정화와 일상에서의 공기 순환에 더욱 집중했죠. 맑은 정신과 깨끗한 공기가, 운과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조금씩 마음을 다듬다 보니 운이란 적이 아니라, 내 삶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처럼, 삶의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과 사람과의 인연이 정리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한 것을, 저는 오히려 고통을 준 것이라고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러한 운의 리듬을 차차 알게 되니, 그 흐름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쪽을 택하게 됐습니다. 처음, 저의 분노로 가득했던 운과의 만남이 어쩐지 미안해집니다. 이제는 제가 운에게 다가갈 차례인 것 같아요.


삶의 전개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고마운 운이, 이제는 내 진심에 조용히 메시지를 건네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의도를 존중하고 상황을 현명하게 바라보려는 사람은 정말로 운과 교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