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아마 존재하는 일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지 글쓰기 탓은 아니다
처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나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후에 작가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고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도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고요히 넘실대던 우리나라의 젖줄 ‘한강’에 ‘노벨문학상’이라는 커다란 운석이 떨어졌다. 고요히 출렁이던 한강은 거대한 물줄기를 뿜으며 용암처럼 솟아올랐다가 우리나라를 온통 감동과 환희의 물결로 덮어 버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님은 이름도 참 잘 지으셨다. 한 때 ‘한강현’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다가 다시 본명인 ‘한강’으로 돌아왔다는데 얼마나 잘한 일인가.
가짜 뉴스가 아니라는 걸 알자마자 나는 책장에 가서 한강 작가의 책을 찾았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과 '2005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몽고반점'이 있을 뿐이었다. 나름 한강 작가의 열혈 독자인데 달랑 두 권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부끄러웠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고 매캐한 종이냄새까지 났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조금은 상쇄되었다. 세상에... 내 집 내 책장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있다니... 감격스러워 가슴이 뛰었다.
‘소년이 온다’ 이후 가장 자전적이라 발표한 소설 '흰' 책은 며칠 전 친구가 와서 가져갔다. 사실은 그 책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워낙 다독가 친구라 거의 안 읽은 책이 없을 줄 알고 읽고 싶은 책 있으면 가져가라고 큰 소리를 쳐 놨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다른 책 보다 작고 얇은 그 책을 빼서 들자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 친구의 손에서 책을 빼앗다시피 가져와 내가 줄도 긋고 메모도 많이 해 놨을 텐데... 하면서 책을 펼쳤다. 언제부터인가 그 습관이 없어졌지만 나는 책을 사면 책의 앞 여백에 그 책을 구매한 날짜와 그 시기나 그 날이나 그 순간의 짧은 단상을 써 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 책에 그렇게 써 놓은 글이 있으면 그걸 핑계 삼아 안 된다고 할 참이었는데 그 책은 공교롭게도 깨끗했다. 그 습관이 없어진 다음에 구매한 책인 모양이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흰’ 책이 책장에 없는 것이 더욱 서운해졌다. 반대로 그 친구는 흐뭇해하겠지...
맨 부커상에 빛나는 '채식주의자' 그리고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다. 그 외에 '내 여자의 열매'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등의 제목이 막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세상에... 내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네... 또 한 번 감격스러워 가슴이 벅차 올랐다.
'여수의 사랑' 책을 펼쳐 보았다. '99.11.4. 목. 아름답고, 쓸쓸하고, 그리고... 안타까운 미열을 나날...'이라고 쓰여 있고 글 밑에 나의 사인까지 있다. 사인을 왜 해 놓았을까... 나에게도 사인이 필요한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던 때였나... 씁쓸함에 쓴 웃음이 났다.
11월인데 아름답다고?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쓸쓸한 거는 이해가 되는데... 그때가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서울의 출판사에 다닐 때였구나... 미열의 나날...이라 함은... 맞다... 그때 내맘을 살짝 흔든 직원이 있었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었고... 당시 출판사가 주택가 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면 다른 직원들보다 점심을 빨리 먹고 주택가를 천천히 거닐거나 편의점이나 수퍼 앞 테이블에 앉거나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문학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었다. 문학적 관심 뿐이었던 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룬 그가 존경스러웠었고 그 시간들 때문에 당시의 힘들고 고단한 생활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미열의 나날이라 함은 그날들이었던 것 같다.
한강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붉은 닻'은 필사도 했었다. 끝까지 필사한 몇 개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고 관능적이고 아름답고 비극적인 소설 '몽고반점'은 책상과 베란다와 거실을 몇 번이나 옮겨 앉아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완독했다. 2005년 그때는 아름다움과 비극 편에 무게가 실렸었다면 지금은 충격과 관능 편에 무게가 기울어지는 느낌이었다. 형부와 처제가 아니었다면 충격과 관능도 덜하겠지만 아름다움과 비극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몽고반점’과 연작인 ‘채식주의자’는 다행히 유투브에서 오디오북으로 제공되고 있어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들었다. 주방에 들어선 아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며 놀랄 정도로 집중해서 들었다. ‘내 여자의 열매’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도 오디오북으로 다시 들었다. 출판사도 서점도 온라인도 헌책방도 중고사이트도 ‘한강’ 작가의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호황이란다. 어제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다 온 친구도 ‘한강’ 작가의 책을 대여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오픈을 기다리고 있더라고 했다. 나보다 더 한 강 작가의 열혈팬인 친구는 한강 작가가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왕관의 무게를 어찌 견딜지... 하면서 축하와 동시에 작가를 걱정했다. 아... 나는 그런 걱정까지는 못했는데... 괜히 판정패를 당한 느낌이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뒤편의 '문학적 자서전'도 읽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를 임신한 작가의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려 한 달 동안 매 끼 한 움큼씩 약을 먹고 겨우 회복되자마자 아이를 지우러 병원에 갔다 한다. 의사는 임신 4개월로 접어들어 태반이 형성되어 당장은 위험하다고, 2개월 후에 다시 오면 유도 분만을 할 수 있겠다고 했고 2개월이 지난 후 어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으셨단다.
왜 안 가셨어요? 언젠가 작가가 물었을 때 어머니는 그냥, 가기가 싫더라...라고 대답하셨다고.
그러니까 작가는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리고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서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말하기를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글쓰기란 고통보다는 자유와 몰입, 충일의 느낌으로 새겨져 있다. 때로 나에게 글쓰기가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아마 존재하는 일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지, 글쓰기의 탓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