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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시 Jul 31. 2023

바다같은 연인

나는 그대가 나의 영원한 상징물임을 다짐했다

  그대는 성찰을 했다. 그때의 그대가 내게 얼마나 다정했는지. 하지만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일군 파동이 나를 어떻게 침식시켰는지. 바다 같은 그대가 늘상 보내던 파도를 철썩철썩 맞고만 있던 내 다리는 휘었고 허리는 가늘었고 얼굴엔 치우기 싫은 그대의 하얀 염분이 쌓였다.


 그대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대를 마침내 극복하고 이제 만나도 아무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대 앞에서 남들에게 그러하듯 자연스레 웃고 친절히 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하지 못했다.  그대의 행동에서 주운 몽돌을 던졌다. 내가 아팠던 방식으로 그대에게 몽돌을 던졌다. 하지만 그대는 알아채지 못한다. 고작 인간이 던진 몽돌이 바다를 파동시킬 수는 없다는 걸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대에게 가득 잠겼던 적이 있다.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반짝이는 윤슬을 가득 안은 채 내게 다가오던 날들에 의심 없이 기꺼이 그대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윤슬은 잡을 수 없었고 얕고 따뜻했던 물은 갈수록 깊고 서늘해져갔다. 그대의 한가운데 깊숙이 빠져들어 표류하던 때의 나는 그대가 나의 영원한 상징물임을 다짐했다. 그대가 나의 사랑이라고, 처음 그것이라고. 뜨거운 나를 식혀 제련시키는 다정한 그대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식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눈을 떠도 감아도 검고 차가운 그대 안에서 온기를 빼앗기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도 손바닥의 열기도 심장 가까이까지 모든 열기를 천천히 빼앗았다. 그대가 가져간다면 기꺼이, 하지만 인간의 열기가 바다를 데울 수는 없었다.


 그대의 안에서 한순간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대 안에 텅 빈 공간이 되고 싶었다. 그대가 남은 내 공간을 보며 그리워하기를 아파하기를, 다시 채우고자 노력하며 아프길 바랐다. 하지만 바다에서 인간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수면이 얕아지진 않았다.


 그대를 기다리겠다 했다. 그대가 변하고 다시 따뜻했던 그때로 돌아올 때까지 그대의 곁에 조용히 머물겠다 했다. 하지만 바다의 변화는 느리고 더디었고 인간의 노화는 그에 비하면 계절 간 피고 지는 꽃과 같았다.


 마침내 그대를 벗어나 모래사장에 뒤엎어졌을 때,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모래가 온몸에 들러붙었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봐도 몸에 엉겨 붙은 모래가 털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뜨겁고 따가워서 들고 있기가 버거웠다. 눈에선 물도 없이 모래만이 흘렀다. 울어도 울어도 얼굴조차 씻을 수 없었다. 아프도록 뜨거운 태양 아래 그대의 흔적들이 증발하길 바라며 몸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새빨개지면 그땐 그대의 흔적을 털어낼 수 있을까.


 그대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마음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그대의 안에서 헤엄쳐 나왔다. 뜨거운 태양은 내 온기를 채워주는 듯 따스했지만 그래서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선 그 태양 아래 몸을 태워야 했다. 너무 뜨거워서, 물에 더 쉽게 씻겨지겠지 싶어서 그대에게 발을 살포시 담그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되는 고통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대에게 다시 한번 반하고 다시 한번 그 태양을 기다리겠지. 그러고 단념하여 모래를 다 털어낸다고 해도 모래사장을 벗어나는 동안 그대의 흔적은 내 발목을 잡으며 부드러이 어르겠다. 나는 개의치 않고 걸어 나가겠지만 돌바닥에 도착한 후에도 그대의 모래는 어디서든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는 반짝이처럼 나타나겠지.

그리고 벗어난 그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먼 후엔 그대는 내 첫사랑이 되어 있을 것이야. 아픈 것은 다 잊고 아름답고 열정적이었던 기억만 남은 채로 아름다운 그대로 내 사람들에게 전해지겠지.





<바다에 남겨진 고백>


바다의 곁에 남겨진 고백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대에게 영원을 약속한 한 어리석음이 늦게는 미련이 되어 남았다. 이 고백은 그대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겠지. 낭만적이고 종속적인,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해하게 되겠지.


나는 바닷속에 가라앉을 거란다.

푸른 바다로 가라앉아 부드러운 파도를 타고 찬란한 산호와 인사를 나눌 거란다.

작은 물고기의 안내를 받을 거란다.

빛이 들지 않을 무렵엔 다정한 해초가 나를 이끌어 주겠지.

그러다가 마침 뜨거운 모랫바닥에 닿으면 나는 편안히 눈을 감을 거란다.

두근두근 박동하는 심장에 귀를 기울이고

청춘을, 사랑을 가라앉힐 거란다.

내가 걸어 들어간 해변의 이름은 그대이겠지.

네 심해로 가라앉아, 네 심장에 닿아서, 너의 일부분이 될게.

내 청춘을, 내 사랑을 너에게 줄게. 내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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