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부는 날이었다. 하나 남은 우산이 꺾여 손목에 걸었다. 허릿께까지 차오른 물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떠내려온 종잇조각을 집어든다. 잉크가 다 번져 내용을 알 수 없는 신문지. 정수리에 올려둔다. 눅눅한 종이가 머리카락과 뒤엉킨다. 손짓을, 걸음을 반복한다. 빗줄기가 잦아든다. 오기로 붙잡은 우산을 놓는다. 떠내려가는 것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진창이 된 물 속을 헤집어 바위를 건진다. 뚫린 벽을 막으니 물의 높이가 발바닥까지 서서히 낮아진다.
'아쉽게도 J그룹 최종면접에서 불합격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아쉽게도. 모니터에 비친 문구 첫 단어를 조용히 되뇌었다. 아쉬울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를 선택하지 않은 회사도, 그리고 세연 자신도 아쉽지는 않았다. 단지 막막했을 뿐이다. 더 좋은 다음 기회에 만나뵙기 원한다는 문장. 아무 소용없을 한 마디. 수많은 탈락자들에게 복사 붙여넣기 되었을 매크로.
지독하게 아픈 열병이다. 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날이 더운건 아니었다. 속에서 배출되지 못한 열이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검고 작은 손전등 하나, 그리고 우산 하나. 저수지 곁 깊게 파인 웅덩이에서만 볼 수 있는, 벽의 사소한 균열은 세연만의 비밀이다. 손전등으로 사정없이 균열을 내리친다. 불빛이 사라지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나오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손전등이 파괴된다. 균열도 파괴된다. 세연은 웅덩이에 누워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물 속에 잠겨 들리지 못할 말. 그러나 분명히 입 밖으로 터져나온 한 마디.
"아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