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작고 빨간 우편함은 녹슬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저수지 사건 이후 지내던 곳에서 쫓겨나다시피 짐을 쌌다. 사람들은 세연을 미치광이로 인식했다.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지, 마을에 물난리를 일으키려 했다고 손가락질 해댔다. 초범에 다시 벽을 막고 바로 신고하여 자수한 점이 참작되어 훈방으로 풀려났다. 기록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덥네."
양지 바른 곳에 심은 한 그루 벚나무가 푸르렀다. 여름의 색이다. 우편함 문을 열어보니 퀘퀘한 먼지 구덩이 속 오랜 편지가 여럿 들어있다.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편지를 꺼내 들었다. 발신인이 적히지 않았다. 빈 집 우편함에 몇 번이고 종이를 두고갈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이호는 세연이 여섯 살 즈음 되던 해, 옆집으로 이사온 부부의 외동 아들이었다. 깡마른 몸, 창백한 피부, 햇빛을 받아도 도무지 붉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푸른 입술. 힘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 대문 앞에 서 있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안녕~ 이호야, 너도 인사해야지?"
어른들의 형식적인 웃음이 무색하게 이호는 입을 끝까지 열지 않았다. 나의 엄마는 익숙하단 듯, 아이가 낯가림이 심해서 그런것 같다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는 열 살 이었다. 나와 네 살 차이가 났으나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심부름으로 먹을 것을 싸들고 들어가면 언제나 방 안에 누워 있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골몰히 생각할 뿐, 사람들에게 도통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