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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실 Aug 30. 2023

취향은 자본에 비례하는가.

경제적 제약으로 취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비싼 물건에 대하여


취향을 찾아 헤매다 보면 어째 점점 더 고가의 물건들이 눈에 아른거리기 마련이다. 디자이너 A의 가구를 알게 되면 얼마 뒤 세간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B의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실크 벽지만으로 만족하는 정도였지만, 실크 벽지 위에 내가 좋아하는 문양이 프린트된 벽지를 찾다 보니, 이제는 아예 벽화처럼 주문 제작이 가능한 뮤럴 벽지를 고려하게 되는 식이다.


취향의 깊이라는 것이 가격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비쌀까? 내가 취향이 고급인가 봐.'

Hans J. Wegner의 Papa Bear Chair 1) ⓒCOLLECTION.B


취향과 자본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고가의 물건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고가의 물건은 정말 좋은 물건일까? 여기서 좋은 물건이라 함은, 기능적으로도 완벽하고 품질이 우수하며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함한다. 고가의 물건이 고가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물건의 질

어떤 물건이 비싼 이유로는 희소성이 있고 뛰어난 소재를 썼다거나, 더 장시간 공을 들여 정성스레 생산한 것이라던가, 아니면 편리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가격이 나가는 물건은 실제로도 좋은 물건일 확률이 높다.


재미있는 것은 물건의 품질이 좋아질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폭은 품질 개선의 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100%를 달성하기 위해 99%를 완성한 후 마지막 1%를 해내는 것은, 50%에서 51%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만 하더라도, 이미 가벼운 카본프레임 자전거의 본체 무게 100g을 더 줄이기 위해 기업은 얼마나 많은 R&D 비용을 지출하는가.


2. 고가 전략

물건이 비싼 데에는 품질 측면의 이유도 있겠지만, 필수재를 생산하지 않는 기업은 본인이 더 특별해 보이고 싶다는 인간의 심리와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하이엔드 전략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명품이 고가전략을 고수하지 않는가.


3. 수요-공급의 문제

공급이 한정된 물건은 비싸다. 애초에 생산량 자체가 정해져 있는 것,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것, 또는 수요에 맞게 급히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것은 가격이 높다. 어떤 유행으로 인해 수요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해도 마찬가지다.


가격 또한 경제학적 요소이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는 것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 물건을 찾는 이유가 물건의 질이 좋아서든, 고가의 물건을 갖고 싶은 허영심과 소유욕이든, 아니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 온 결과든, 비싼 물건을 원하는 사람은 그 물건의 수보다 많다.




취향과 자본의 관계


Solid Air (호주 시드니) ⓒAnna Carin Design Studio 2)


집을 꾸미는 것과 인테리어는 가장 비싼 취미 중 하나라고 한다. 보석, 시계, 자동차 등 세상에 비싼 것이야 한 두 가지이겠느냐만은 각각의 영역에서 최고를 고집했을 때 가장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집이기는 하다.


자본이 많을수록 인테리어의 옵션이 더욱 다양해지고, 고급 취향을 가진 집주인으로 보일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더 층고가 높은 집을 지어도 여름철 냉방 비용이 두렵지 않을 것이고, 높은 층고 전면부를 창호로 시공하여 채광을 극대화하고, 거기에 긴 펜던트 조명을 달 수 있다. 붉은 벽돌집을 좋아해서 거실의 한쪽 벽을 테라코타를 활용 조적벽돌의 느낌을 내고 싶어도, 예산이 부족하다면 집 전체를 동일한 벽지도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취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돈이 없으면 취향을 실현할 수 없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인디언 부족의 남자들은 깃털 장식 모자가 멋지다는 것을 몰라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추장이 아니기 때문에 쓰지 못한 것이다. 조선 시대 넓은 땅덩어리 펼쳐진 지방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부잣집 양반은 인테리어 취향이 부족해 99칸의 기와집을 짓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한 것 맞고, 돈이 있다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사실이다. 특히 집 꾸미기와 인테리어는 본격적으로 접근하자면 예산의 제약이 주는 허들이 매우 높은 분야이다. 집 꾸미기에 관심을 갖고 많은 레퍼런스들을 찾아보며, 잘 꾸며졌다고 생각되는 집에 순서를 메기자면 마치 집주인의 경제력 순과도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하는 다.




취향과 자본, 그리고 감각의 문제


나는 빈티지 가구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디자이너 미상의 덴마크 빈티지 가구에서 시작해서, 북유럽의 디자이너 빈티지 가구, 임스 부부로 대표되는 미국의 빈티지 가구를 지나 샬롯페리앙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빈티지 가구까지 관심사가 이동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아마 같은 순서로 관심사가 이동할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순서가 빈티지 가구 가격의 순서와도 같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월급을 모아 가구를 구매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더 고가의 가구, 다르게 말하면 더 고급 취향을 가진 자가 소유하는 것으로 이미지화되는 가구로 관심이 옮겨갈수록 실제로 그 가구를 품에 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결국 뛰어난 취향을 가진 집주인이 되려면, 타고나기를 부(富)를 얻고 세상에 나왔거나, 사업을 해서 일약 떼부자가 되어야 했다. 사실 가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음에도, 재력을 이용해서 그 가구를 소유한 것만으로 취향과 안목이 뛰어나다고 기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고, 돈이 부족해서 집을 나의 취향대로 아름답게 꾸미기에는 제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위의 문단에서 이야기했던, 인테리어 취향은 자본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시기와도 동일했다.


그러다가 인테리어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너무나도 잘 꾸며 놓은 집을 하나 보았다.

크게 비싸고 좋은 인테리어 소재를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집주인의 취향은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의 감동을 주었다. 물론 그의 집에서 대략적인 인테리어 예산이 파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의 집은 그가 집에서 보내는 여가와 휴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사진으로만 마주해도 ''라는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역시, 세상에는 돈도 많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아마 그 집의 주인이 더 많은 예산을 가졌다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곧이어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은 적은 예산으로도 미적으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내었다는 그 '효율성' 놀라게 하는 집이었다. 고철 양동이에 꽂힌 시든 꽃 한 다발은 프리츠 한센 꽃병의 이케바나보다 감각적이었고, 거칠거칠하고 얇은 광목 천으로 감싸 만든 조명은 아르떼미데 쇼군보다 도도했다. 세련된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그의 감각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집은 그의 인생 그대로와 생활양식, 그의 성향생각을 고 있는 집이었고,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집과 주인이었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집 꾸미기와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돈이 생기면 '집 안에서 생활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돈으로 획득할 수 있는 다른 것을 바라볼 것이다. 장 푸르베의 의자를 몇 십 개씩 부담 없이 사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루프탑에 놓을 수 있는 경제력이 생겼다면, 더 이상 그 의자를 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의자의 초기 에디션 빈티지를 찾아 헤맬 것이고, 의자 옆에 있는 나사의 형태가 과연 초기에 생산된 것이 맞는지에 집중할 것이다.


인테리어 예산이 많다면 훨씬 유리한 여건에 있겠지만, 그저 비싼 소재와 비싼 가구를 마구잡이로 들여놓은 집은 영혼이 없다. 물론 예산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내 감각이 더 센세이셔널해져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얼마든지 내 집을 꾸밀 수 있다. 창의성은 제약에서 나온다고 했다. 오히려 과도한 풍요로움은 기존 관습과 디자인에 대한 고착만을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제약된 조건 속에서 내 취향에 맞는 디자인과 집을 찾아나서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집, 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집은 그리 큰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Tip. 적은 예산으로도 집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들


[액자] 액자 속의 그림은 시선을 잡아끌기에 유용하다. 한쪽 벽면을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하고 싶지만 예산이 없다면, 대신 시크하고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를 뽐내는 사진이나 일러스트 한 장을 그 벽에 걸어보자. 포스터와 액자틀에 해당하는 비용만으로 내가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벽장식(천, 태피스트리)] 액자와 같은 원리인데, 커다란 패브릭이나 태피스트리와 같은 벽장식은 시선을 잡아끌어 분위기를 전환시키기에 좋다.


[수집·취미로 즐기는 것들(식물, 책)] 식물이나 책과 같이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일종의 수집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 수집품을 단순히 수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디스플레이할지 생각해 보자. 집주인의 취미생활을 잘 보여주는 집이 멋진 집이다.


[조명] 집의 분위기에 조명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인테리어라는 것도 시각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기에 빛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 안의 분위기가 바뀐다.



1) 덴마크 가구의 거장 한스 웨그너가 1951년 디자인한 안락의자(easy chair, comfort chair)로, 그의 가구 중 가장 고가의 가격을 자랑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현재 빈티지 가구 시장에서 패브릭으로 업홀스터리 된 파파베어의 거래 가격은 5,0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2) 유튜브 채널 The Local Project의 2023.7.28. 영상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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