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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실 Sep 05. 2023

식물, 저렴하고 진정성 있는 인테리어 재료

집이 허전하다면 식물을 키워보세요.

앞선 글에서 취향과 자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자본을 많이 보유할수록 스스로의 취향을 '더 힘을 들이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현실화할 수 있다. 1) 인테리어와 집 꾸미기는 기본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에 속한다. 가구 하나의 값은 일주일의 해외여행 비용과 맞먹기도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저렴하지만 인테리어 효과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https://brunch.co.kr/@sirigo/11


식물은 사람에게 위로를 준다. 식물을 좋아해서 책을 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옆에 둔 작은 화분이 올린 꽃대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식물이 주는 위로와 자연의 위대함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는 인테리어 재료로써의 식물에만 초점을 두려고 한다. 식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세상에 나와 있는 많은 글에서 이미 다루었기 때문이다.




베란다가 확장된 공간, 즉 집 안에서 해가 가장 강하게 드는 곳은 온통 식물뿐이다. 식물들이 아니었다면, 내 집이 얼마나 허전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펼쳐지는 잎들의 그림자놀이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벌레를 쫓아 준다는 구문초는 보통의 제라늄보다 더 잘게 찢어진 이파리를 갖고 있는데, 그림자를 통해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별과 같다. 해가 질 때면 어느덧 주황색이 된 하늘과 뭉개진 그림자가 보인다.


식물은 좋은 인테리어 재료이다. 식물로 채워진 이 공간의 싱그러움과 푸르름, 그리고 생동감을 다른 소품이 따라갈 수 있었을까?




일단,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식물은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작은 소품을 제외하면 아마 가장 저렴한 인테리어 소재일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누군가가 50만 원을 주었다 치자. 그리고 이 돈을 활용해서 무엇을 사서 어떻게 꾸미건 그것은 자유이다. 같은 비용으로 집 안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으키기를 원한다면?


식물을 두어라.


2023년을 기준으로 50만 원이라면 천장에 닿을 듯 자란 휘커스 움베르타가 심긴 대형 화분 하나와 방실한 잎이 매력적인 필로덴드론 두어 종류와 안스리움 하나, 그리고 레몬이 하나 달린 작은 레몬나무 한 그루와 포트에 담긴 각종 허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거실 창가에 배치한 거대한 휘커스 움베르타는 삭막함을 크게 덜어주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큼지막하게 떨어지는 그림자로 통해서 알려줄 것이다. 거실의 또 다른 한쪽에 가습기와 같이 둔 필로덴드론과 안스리움은 시도 때도 없이 하트 모양 잎새를 뽐내며 시선을 잡아끌 것이다. 가끔은 그 보송한 잎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파리의 윤곽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 자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TV 옆에 둔 레몬나무의 여린 가지는 그렇게 큼지막한 과일을 어떻게 시종일관 붙잡고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볕이 드는 방에 옹기종기 모아 둔 귀여운 허브들은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당신의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만들 것이다.


식물 하나가 주는 효과는 크다. 거실에 작은 나무가 몇 그루만 있어도 집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한 포트에 만 원도 넘지 않는데 이만한 기쁨을 준다는 게, 식물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창밖을 보고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테이블에 놓인 작은 화분들이 주는 푸르름 한 모금, 좀 더 고개를 들어 멀리 파란 하늘의 푸르름을 한 모금 하다보면, 핸드폰만 계속 보고 있는 것이 어째 더 힘든 일이 된다.


화려한 마큘라타 잎들 옆으로 역시나 쨍한 색채의 그림을 배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이 그림, 저 그림 바꾸다 보면 나만의 미술관이 따로 없다.


가끔 햇살이 좋으면 한참 뽐을 내고 있는 윤기가 반드르르한 식물들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평소 내가 보던 시선과는 다른 위치에서 렌즈를 열면, 정글에 들어온 것처럼 다른 시야의 세상이 펼쳐진다.




집에 식물을 둔다는 것은,


식물이 있으면 집 안에서 할 일이 많아진다. 식물을 가꾸고, 식물과 집 안의 물건을 바꾸어서 배치해 보기도 하면서 집구석구석 손길을 뻗기 마련이다. 식물을 키우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어쩌면 더 자주, 물을 주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새 식구가 들어오면 같은 습성을 갖는 친구들끼리 모았다가, 다시 떼어 놓기도 하면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본다. 집에서 볕이 잘 들지 않는 뒷 베란다의 타일 바닥 위로 고사리를 모아 두고 마음 편하게 분무기를 뿌려대 보기도 할 것이다. 키가 커진 올리브 나무 화분을 바꾸어 주기 위해서 양각의 무늬가 있는 토분을 살 지, 예쁜 색으로 코팅 처리가 된 유약분을 살 것인지 한참 동안 쇼핑을 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구문초와 율마를 가지고도 어떻게 하면 수형이 예뻐질지 고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봄에 수선화가 피면 우리는 그 화분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두었다가, 수선화가 지면 그 자리에 다시 화병 하나를 둘 수도 있다. 로즈메리와 바질을 부엌의 벽 선반에 두고 아끼는 컵 두어 개를 같이 놓아, 보기만 해도 싱그러워지는 벽으로 만들기도 할 것이다. 키우고 있는 러브체인의 머리가 길어지면 책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이사를 시켜 줄 것이다. 식물로 인해서 우리는 집에 더 손길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집은 조금씩 내 손길에 따라 꾸며지게 될 것이다.




싱고니움처럼 성장이 빠른 친구들은 수경재배, 흙으로 옮겨심기, 지지대 세워주기의 무한굴레를 돌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잎맥에 물기가 촉촉한 여린 잎을 흙에 심어주고, 그 여린 줄기가 꼿꼿해지는 시기를 지날 때이다.


머리가 길게 길게 자라는 친구들은 선반 위에 두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날에는 창을 열어 두는데, 그러면 이 하늘하늘한 잎과 가지들이 기분 좋게 흔들린다. 그 살랑임에 식물들과 나, 모두 다 기분이 좋아진다.


거실 중앙의 사이드보드와 라탄 테이블은 어떻게 보면 우리 집의 해시계이다. 햇살은 비스듬하고 깊숙이 들어와 칼 같이 떨어지는 45도의 각도를 지나 깊숙하고 흐리멍텅하게 들어오더니 이내 사라진다. 나는 45도로 떨어지는 한낮의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생명을 돌보는 숭고한 일이다. 식물은 집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다. 그들은 온몸으로 빛을 받아 치열하게 양분을 합성하고 숨을 뱉어내며 쉴 새 없이 물을 빨아들인다. 하루종일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식물의 잎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새에 몇 센티미터나 자라 있기도 한다. 식물이 새 잎을 내고 생명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고, 아름다우면서도 감동적인 일이다. 무더운 여름에 삐죽 내미는 몬스테라 신엽에 구멍이 몇 개나 났을지 기다리는 일, 습도가 높은 날 아침이면 잎 끝에 토해놓은 작은 물방울에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발견하는 일 모두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만든다.


만약 여러 취미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본다면, 인테리어와 식물 키우기 간의 상관도는 상당히 높게 나올 것이다.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괜히 식집사들이 많은 게 아니다. 완벽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집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인테리어의 마지막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조 여인초 하나 정도라도 두게 마련이다. 마치 완성되기 직전의 용의 그림에 눈알을 그리듯이 말이다. 그만큼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연의 모습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집 안의 식물은 생명이 주는 아름다움경험하게 해 주고, 같이 성장해 나가는 존재가 되어 준다. 그렇게 보면 식물이야말로 가장 진정성 있는 인테리어 재료가 아닌가 싶다.



1) 돈이 많아야만 취향을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많을 경우 취향을 실현시키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도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대로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따옴표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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