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을 한다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대상은 우표, 동전, 스티커, 엽서와 같은 것들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수집이라고 해서 이렇게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두거나 컬렉팅북에 붙여 놓을 수 있는 작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색연필, 냄비, 스타벅스 시티컵, 각종 전동공구와 장비, 스피커, 아스띠에 드 빌라트의 세라믹, 알바알토의 가구까지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아주 다양하다. 그렇게 보면 집 안의 한 구석에 우표가 1,000장쯤 붙어 있는 파일이 없더라도,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Crow Collects ⓒCori Lee Marvin
집과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미니멀을 추구하지 않는 이상 조금씩 수집가가 되어 간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배불리 밥을 먹은 뒤 거닐며 마주친 한 공방의 판매대에서 '이 양초 하나는 우리 집 식탁에 센터피스로 하게 데려와야지.'라는 식의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하나 둘 살림살이와 예쁜 물건을 늘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깨진 유리조각과 풍화될 대로 풍화되어 표면이 반들반들해진 빛나는 돌과 플라스틱 따위를 모으는 까마귀와 까치가 된 것만 같다.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레코드판에서 재생되는 음악과 외출을 좋아하는 사람은 LP 바에 가서 음악을 듣고 와인 한 잔을 주문할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음악을 좋아하고, 집을 즐기기도 하는 사람은 거실 한쪽에 턴 테이블을 놓고, 그 옆으로는 장을 짜 두어 적게는 대여섯 개에서 많게는 몇 백 개의 LP판을 수집하고 음악을 들을 것이다. 아마 그의 부엌에는 다리가 짧은 고블렛 잔에서 긴 잔까지, 그리고 종류별로 맥주잔을 잔뜩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 안에서의 경험을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집을 하고, 그것들을 보기 좋게 진열하고 집을 꾸미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사회 초년생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의 생활에서 가장 주된 것으로 자리 잡으면서 핸드드립 세트와 갖가지 커피 용품을 구매한 뒤, 출근하자마자 정성스럽게 원두를 갈게 되는 것과도 같은 원리라고나 할까.
그런데 수집이라는 것은 꼭 하나의 물건만을 모으는 것은 아니다. 수집가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물건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장인의 수준으로 그것을 모으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식물을 좋아하는 수집가라고 했을 때, 다른 식물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제라늄과 사랑초는 몇 십 개씩 키우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수집가가 많다. 특히 인테리어와 집 꾸미기 분야에서는 말이다. 그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바뀐다. 집에 자연스러움을 더하는 라탄 소품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다이닝체어로, 심심한 벽에 화려함을 더하는 그림에서 주방의 형형색색리넨 소재 행주로, 스페이스 에이지 디자인의 조명에서 크기가 다른 달항아리들로 말이다. 집을 좋아하는, 그리고 집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 즉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집에서 본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수집품들은 일상에서 필수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게는 일상에 필수인 것에서 시작해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끝난다. 처음 입주한 신혼집에서 부부 둘을 위한 커트러리 몇 개와 접시 서너 개는 필수적이지만, 조금씩 사 모은 오벌 접시, 귀달이볼, 파스타용 접시, 빠에야 팬, 디저트 커트러리의 집합은 조금씩 '필수적임'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도 뭐, 만약 내가 양파수프는 꼭 귀달이볼에 먹어야만 행복해진다면 완전하게 무용(無用)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이야기가 커지는 것 같지만 이게 바로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풍요 아니겠는가. 너무 과도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아라비아핀란드 빈티지컵과 접시를 수집하고 있다. 아라비아핀란드는 스웨덴의 로스트란드社가 1873년 핀란드에 설립한 회사로, 처음에는 러시아 황실에서나 쓸 법한 화려한 도자기들을 생산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라비아핀란드의 빈티지 제품들은 1960년대 울라 프로코페(Ulla Procopé)가 디자이너로 합류하면서부터 생산되었다. 미색의 바탕에 핸드 페인팅으로 그려진 꽃 잎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처음 아라비아핀란드 빈티지를 알게 된 뒤, 7년여의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무늬의 톨컵을 주로 수집했다. 저 멀리 호주의 한 주부와 이베이로 컵을 거래하기도 하고, 아라비아핀란드 빈티지를 취급하는 상점에 새 물품이 입고되면 바로 달려가 무늬가 얼마나 잘 나온 컵인지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신기한 것은 매일 마시는 커피라고 하더라도, 오늘은 어떤 컵에 마시고 싶은지 기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에메랄드 바닷빛을 띄는 메리 잔에 마시기도 하고, 이상하게 어떤 날은 베이비 핑크색이 참 예쁜 코랄리 잔이 당기기도 한다. 이제는 원하는 무늬를 모두 손에 넣어서 더 이상 추가적으로 컵을 들이지는 않는다. 아라비아핀란드 컵과 접시가 가득한 이 나무 수납장은 볼 때면, 항상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수집을 하면서 흐뭇하고,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오랫동안 찾던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감, 그리고 내 집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뿌듯함과 행복은 인생에 풍요로움을 더해 준다. 물론 내 컬렉션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물건에 대한 집착, 그 물건을 쓸 때 느끼는 행복이 없이 단순한 소유욕만으로 수집에 접근한다면 스스로 제어가 필요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자꾸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즐거운 수집은 삶에 건강함과 재미를 한 스푼 보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