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예술 사조로, 순수미술과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나타났다. 회화에 있어서는 선과 단순한 형태를 강조한 2차원의 묘사 형태로, 조각에 있어서는 금속, 콘크리트, 플라스틱, 유리섬유(Fiberglass)와 같은 산업 재료를 활용한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특징지어진다.
뉴욕 Seagram Building (미스 반 데 로에 디자인) ⓒKen OHYAMA
건축에 있어서의 미니멀리즘 역시 여타의 장식이나 불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겨서 최대한 단순한 형태를 추구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유명한 말 'The less is more', 우리말로는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함축된다. 1) 어떤 물건이나 건축물의 디자인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와 재료를 활용하여 설계했을 때, 즉 완성된 디자인에서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장식을 무한정으로 더하는 것보다 극도의 간결함을 통해서 실용성과 우아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 물론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사랑하는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이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를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당연히 '미니멀'은 인기를 끌고 있다. 2차 대전 전후 미니멀리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포함한 북미권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없다. 2) 특히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체리색 몰딩과 옥색의 붙박이 찬장과 화장실 세면대, 현란한 꽃무늬 벽지와 노란색 장판에 싫증이 단단히 난 것인지, 해외보다 새하얀 인테리어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것 같다. 일단 섀시를 포함한 집의 모든 벽면과 붙박이장들이 새하얗다면 '이 집 인테리어 좋네'라는 평을 받는다. 혹자는 그런 집은 병원 같아서 싫다고 한다지만, 대세는 시각적으로 하얗고 모든 물건을 붙박이장 안에 숨겨 놓은 집이 훌륭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만 보면 우리는 미니멀한 인테리어로의 이행을 결심하고 일단 버리고 본다. '1초 스캔'이라는 말도 있다. 1초 안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바로 버리는 것이다. 미니멀을 실천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삶의 위한 '최소한의 물건'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삶을 다이어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니멀한 집에 대해서 약간의 오해가 있다는 점이다. 과연 무조건 적게만 소유하는 것이 미니멀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거추장스러워서 일단 버린 뒤 나중에 또 같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미니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물건에 대해 중복으로 지출을 했을 뿐 아니라 같은 물건을 제조하기 위해 그만큼의 재료와 에너지가 투입되었을 것이다. 대학가에서 혼자 사는 자취방 안에 아무런 가재도구가 없는 것이 겉으로는 미니멀해 보일지라도, 매끼 플라스틱 수저를 쓰기 때문에 일절의 살림살이가 없어도 되었던 것이라면 어쩐지 미니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보기에 예쁘지 않은 밥솥과 전자레인지를 넣기 위해 멋있는 수납장을 짠들, 만약 밥을 짓고 밥을 먹을 때마다 북밭이장을 열어야 하는 추가적인 동작을 해야 하는 불편이 생겨났다면, 그건 미니멀이 아니라 겉보기만 깔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주방 안에서의 동선과 행위는 less가 아닌 more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건이 무작정 많다고 미니멀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집에 기타가 세 대나 있고, 커다란 악기용 습도조절 캐비닛이 하나 있어 작은 방 하나를 완전히 잡아먹는다고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 통기타 연주를 해야 하고 퇴근 후에는 소리가 작게 나는 나일론 줄 기타를 퉁기고 싶다면 정당한 소유인 것이다. 집에 물건이 많아도 정리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쓸데없는 것을 구태여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잘 '사용하고' 있다면 상관이 없다. 물론 그것이 10년에 한 번 꺼내 쓰는 물건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내가 가진 물건들은 그저 장식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효율성을 확보한 상태일까.
미니멀과 심플라이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집을 꾸민다는 것은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살고 있는 사람의 주된 행위도 고려하는 것이다. 더 크게 나아가서 집 꾸미기는 매일의 생활과 소소한 삶의 일면을 설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녀에게 독서와 책에 대한 열의를 알려주고자 한다면 자녀의 방에 책걸상을 넣어주고 집중하기에 좋은 심플한 벽지와 적정한 조도의 조명을 꾸며 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집 꾸미기도 결국 나의 일상과 삶을 꾸미는 것의 연장선인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몇 시간이 넘도록 스마트폰을 보다가 어느덧 정오가 지나 집 안에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한 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생활은 미니멀하다고 하기 어렵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깔끔할지언정 말이다.
@theprocesshacker
'If the big rocks don’t go in first, they aren’t going to fit in later.'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 박사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큰 자갈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간 크기의 자갈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 모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다. 유리병에 이 모든 것들을 담으려면 큰 자갈에서 작은 자갈, 모래의 순서로 담아야 한다. 모래를 먼저 챙기다 보면 정작 큰 자갈이 들어갈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인생 전반의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는 각각 큰 자갈은 건강과 가족, 사랑으로, 작은 자갈을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으로 정의한다.
이는 집을 꾸미는 일, 그 집안에서 내 생활을 계획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큰 자갈이 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책상 위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 샤워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도록 화장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 하나의 물건을 오래 쓰는 일, 한 시간 반은 거뜬히 집중할 수 있는 암체어를 하나 놓는 일, 가족 또는 룸메이트와 음식을 먹고 대화를 하는 일 모두 성의 있게 나의 터전을 꾸미는 일이다.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챙기고, 내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을 소유하고 정리하는 일은 본질적이다. 미니멀은 바로 이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일단 다 버리고 다시 사는 것, 이사할 때마다 새로운 물건을 구매해서 시각적으로 깔끔한 집을 유지하는 것, 비록 넓고 심플한 인테리어의 집이지만 거주 인원 대비 넓은 면적으로 냉난방에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쓰는 것, 턴키 인테리어 없이도 잘 보수해서 살 수 있는 집인데도 리모델링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미니멀이 아니다. 다만, 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이고, 자유의 문제이다. 제 기능을 하고 있는 문이지만 다 떼어내고 무문선 몰딩으로 바꾸어도 된다. 각자 원하는 스타일이 있고, 그렇게 시공을 할지 말지는 스스로가 알아서 할 영역이다.
그저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가 '본질'에의 집중이 아닌 다른 의미로 통용되는 때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턴키 인테리어 계약을 통해 새하얀 벽지와 회반죽의 벽, 무몰딩에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 있어 큰 자갈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본질에 맞게 집을 활용하는 일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1) 정확히는, 미스 반 데 로에가 이 말을 처음으로 했던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그는 'The less is more'를 디자인 철칙으로 하여 굉장히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2) 일본은 전후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기보다는 일본 특유의 간결한 인테리어와 다다미 1조를 모듈로 하는 청빈한 형태의 집과 모래 정원이 서양의 미니멀리즘에 오히려 영향을 준 것이 맞다. 이에 북미권과 같이 '본 고장'이라는 표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