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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실 Sep 16. 2023

기후변화와 집

안식처의 소중함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NCEP)는 2023년 7월 4일 지구 평균기온이 17.18도에 달해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기상학자들은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난 7월 4일이 지난 12만 5,000년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23년 7월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며, '지구 온난화 시대(The 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The era of global boiling)가 시작됐다'라고 호소했다.2)


확실히 날씨가 다르다. 장마 시기가 따로 형성되지 않고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피부가 타 들어갈 듯한 거센 햇빛이 내리쬔다. 흡사 스콜을 보는 것 같다. 열대과일이 자라는 한계선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우리나라의 날씨가 동남아시아의 날씨를 닮아가고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비 피해가 발생한다. 기상청은 2023년 6월 15일부터 수도권으로 한정하여 ‘1시간 누적 강수량 50㎜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 이상’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가 내리면 행정안전부를 거치지 않고 긴급재난문자를 직접 발송하고 있다.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는 2022년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를 계기로 도입되었다. 3) '폭우'보다 더 심각한 개념의 '극한호우'가 등장한 것이다.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의 침수피해 모습, 2023.7.17. ⓒ동아일보·문화재청


호우로 인해 문화유산이 큰 피해를 입고, 사람들의 터전 역시 잠겨버렸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린 비는 주거지를 휩쓸어가고, 지하 주차장을 삼켰다. 저층 거주자들을 포함하여 비 피해로부터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살림살이가 홍수로 인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며, 아늑한 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다.


물론 극한호우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집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몸을 뉘일 공간의 유실은 굉장히 큰 문제이다. 집과 공간의 중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터전을 잃고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 <기생충(2019)>의 한 장면 (봉준호 감독·바른손이앤에이 제작·CJ ENM 등 배급)


영화 '기생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장면을 꼽자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택의 집에 홍수로 인해 빗물이 가득 차고, 화장실에서 오수가 역류하고, 온갖 가구와 살림살이가 젖어버리는 장면에서 큰 절망감을 느꼈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떠나서, 기택의 가족에게 집은 마지막 보루이자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 집에 빗물에 폭포수처럼 들이닥칠 때, 나는 기택의 가족에게 완벽하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들은 잘 곳이 없었고, 다음 날 집을 나서며 입을 옷도 없다. 그들의 일상은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갈 다른 곳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 뻔했고, 폭우에 의해 망가진 집의 복구는 태산과도 같은 일이 될 터였다.




어떤 사람은 최소한의 면적만으로도 아무런 생각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좁고 정돈되지 공간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에 집중하지 않고, 그날 밖에서 먹었던 장어덮밥과 생맥주의 시원함이 준 행복감을 계속해서 음미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오염 없는 줄눈이 돋보이는 화장실 욕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상생활의 가장 큰 기쁨일 수도 있다.


행복의 문제에서 나아가서, 누군가에겐 집과 그 안의 사물 집합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인테리어 잡지에서 많이 보인다.


- 저의 작은 원룸은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해요.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지를 온전하게 기억하기 위해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을 하나씩 사 왔어요. 이 방은 정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여행을 다니느라 너무나 역동적이었던 저의 젊은 나날들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어요.

- 저는 요리를 너무 좋아해요. 가족의 삼시 세 끼를 가급적이면 직접 만들어서 먹이고 싶다 보니, 부엌은 제가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되었어요. 지금 이 부엌은 제가 요리를 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동선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 우리 부부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어요. 예전 아파트도 좋았지만 요즘은 층간소음 문제에... 갑갑한 것이 현실이잖아요. 아이들이 한참 뛰어놀 나이가 더 지나버리기 전에 급하게 단독주택을 지었어요. 저희 가족을 위한 너무나 소중한 공간입니다.





나 역시 비슷한 사람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6년이 넘도록 모은 빈티지 그릇들, 손품 팔아 발품 팔아 어렵게 손에 넣었던 빈티지 가구. 그리고 인상 깊은 부분에 빼곡히 붙인 띠지와 메모가 있는 수백 권의 책들과 초등학교 전 학년의 일기장들. 모든 물건에는 나의 시간과 정체성, 취향이 녹아 있다.


사실, 이 물건이라는 단순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나에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닌 사물(事物)이다. 각각의 사물에는 각의 일() 있다. 여러 개의 식물에 한꺼번에 물을 줄 수 있는 대용량의 물조리개에는 정원의 일이, 커다란 냄비에는 항상 대용량으로 스튜를 끓여두는 남편과 나의 생활양식이 녹아 있다.





집 안의 물건도 물건이지만, 무엇보다 아늑한 공간이 주는 기쁨과 위로가 크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일단 오늘도 누울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비를 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아늑한 공간 안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여서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다.



1) 데일리포스트 기사 / https://www.thedaily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00327

2) 중앙일보 기사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0982

3) 한겨레신문 기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996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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