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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로 가을을 강제개방하는 더위 싫어 으르신

루피시아 5654. 카시스 오렌지

by 미듐레어

루피시아의 아이스티용 블랜딩에는 칵테일을 따온 게 유독 많은 느낌인데 논알코올로 파티음료 같은 디스펜서에서 떠먹는 느낌의 음료들도 많이 차용하고 본격적인 알코올 칵테일도 많이 차용하는 편이다. 그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아이스티 추천들의 절반 이상이 아마도 칵테일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오늘도 일본에서 잘 나가는 칵테일인 카시스 오렌지를 모티브로 한 홍차를 마셔본다. 카시스 오렌지도 꽤나 오래전부터 눈동냥을 했던 차로 그랑 마르쉐 한정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못 마셔봤던 차인데 2월 온라인 그랑 마르쉐에서 판매하고 있길래 잽싸게 고민 없이 두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참 상미 같은 거 고려 안 하고 다 마실 수 있는지 고려도 안 하고 일단 무조건 쟁이고 봤던 상반기였네. 당시 가격으로는 50g 봉입에 730엔으로 7월 온라인 그랑 마르쉐에서는 780엔으로 조금 오른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사카 회장에서도 가격 체크를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두 봉 쟁여놨다고 그냥 휙 패스해 버렸다. 상미기한은 제조 1년으로 아무튼 올여름에 다 먹으면 되겠지 하면서 쟁여둔 것.

카시수오레엔지

카시스는 홍차에 흔히 쓰이는 블랜딩 재료이기도 하지만 서양식의 홍차 블랜딩 재료로 쓰일 때는 주로 블랙커런트라는 이름으로 사용이 되고 카시스라고 부를 때는 칵테일등에 주로 사용하는 카시스 리큐르 같은 농축액이나 주스 등의 뉘앙스가 강한 것 같다. 아무튼 카시스 리큐르도 탄산수에 타먹고 각종 하드 리쿼와 함께하거나 주스등에 넣기도 하고 별별 칵테일에 다 활용을 하는데 특히나 일본에서 카시스를 사용하는 칵테일들이 인기인 것 같다. 호로요이 이런 거에도 카시스 오렌지 맛이 따로 있는 걸 보면 아무튼 국민 칵테일의 반열에 오르긴 한 듯.

카시스노 호우쥰나 아마미토 오렌지노 카오리가 닌키노 테이반 카쿠테루오 이메지시타 코우챠. 아이스티이니모.
카시스의 풍부하고 깊은 단맛과 오렌지의 향이 인기 있는 정번 칵테일을 이미지 한 홍차. 아이스티에도.

얼음의 비율을 훨씬 많이 가져가서 좀 더 칵테일의 이미지로 마시는 게 어울릴 수 있겠다. 집에 고량주가 있다면 한두 방울 넣어봐도 좋을 것 같은데 아쉽게 되었네. 아쉬운 대로 탄산수를 조금 넣어본다거나 하는 것도 좋겠다.

까실

봉투를 열어보면 의외로 오렌지 주스의 달달한 향이 큰 휘발성 없이 느껴지고 바싹 마른 오렌지 껍질의 향도 느껴진다. 보통 블랙커런트가 들어있으면 베리류의 달달함도 느껴지곤 하는데 오렌지 주스의 당도가 워낙 강한 건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설탕에 절여져 하얗게 결정같이 굳은 오렌지필과 후추알처럼 단단하게 말라버린 카시스가 토핑 되어있다. 홍차는 닐기리류의 기본적인 인도홍차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향 자체는 확신의 겨울향이다. 바싹 마른 오렌지필의 느낌이 제법 스파이시해서 겨울에 마셔야 할 것 같은 쌉쌀한 오렌지필의 느낌이 지배적이다. 늦가을 향수로 쓰고 싶을 지경.

노을과 오렌지와 카시스

어쨌든 아이스티로 마셔본다. 사실 따뜻하게 마시기엔 달달한 주스 느낌이 뭔가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것 같고 더 나아가서는 감기약 맛이 날까 봐 좀 두렵달까. 6g의 찻잎을 100도씨의 물 150ml에 2.5분 우려서 얼음 가득한 컵에 부어준다. 의외로 오렌지 주스의 달달한 향이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느껴지고 쌉쌀한 오렌지필의 향인지 카시스향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달달하다는 느낌의 향은 아닌데 분명히 설탕 잔뜩 들었을 것 같은 오렌지 주스의 향으로 인식이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비터스윗에 가까워서 정말 어른의 맛이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차맛 자체는 너무 부드러워서 오히려 바디감이 좀 비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 그러다 보니 약간의 낙엽향도 느껴지는 듯하다. 투차를 약간 늘려서 탄산수를 조금 타주면 토닉워터를 어디 타지 않고 처음 마셨을 때의 그 찝찌름 쌉싸름한 느낌이 추가되어서 어른의 느낌이 한층 더 강해진다.

냉침의 경우 4g의 찻잎을 400ml의 물에서 하룻밤 냉침해 뒀다. 좀 더 쓸쓸해진 향이라고 해야 할까. 카시스의 향이 오렌지필의 향을 슬쩍 타고 오르면서 조금 더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렌지필과 카시스의 향이 섞이니까 그 경계를 긋는 걸 잘 못하겠는데 어쨌든 카시스가 진해지니 좀 더 낙엽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쌀쌀한 날의 감성이 살아나서 재밌네. 그 끝에 오렌지 주스의 향이 반짝 빛을 반사하고 사라진다.

가장 기본적인 블랜딩용 홍차잎

카시스 오렌지 맛이 난다고 쓰면 그만인 것 같은데 참 길게도 썼다. 얼마 전 시음기를 올린 허니레모네이드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딘가 어른스러운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약간은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이 있어서 아이스에 잘 어울리는 겨울차의 향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이것도 퇴근 후 밤에 조용히 잔을 달그닥거리면서 마시는 감성이 꽤나 좋았다. 한낮의 더위가 살짝 식어가는 여름밤, 샤워 뒤 에어컨 앞에서 뽀송하게 앉아 빨리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맛이랄까. 건조한 공기를 재촉하는듯한 카시스 오렌지,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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