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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롤로 Jul 14. 2023

다들 이런 생각하며 살지 않나요?

불안과 사는 삶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불안은 대체로 이러하다.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내려갈 때 '이렇게 급하게 내려가다가 구르면 어떡하지.', '혹시 오작동해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어떡하지.'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 기다리면서 '어떤 차가 갑자기 내가 있는 쪽으로 덮치면 어떡하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어떤 차가 나를 치고 가면 어떡하지.'

잠들기 전, 천장을 바라보면서 '혹시 아파트에 불나면 어떡하지, 깊이 잠들어서 경보음을 못 들으면 어떡하지, 무사히 탈출을 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안에서 '갑자기 멈추면 어떡하지' (그러면 비상 호출을 눌러야지) '그런데 비상호출을 눌려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휴대폰으로 119에 신고하면 되지) '그런데 전화가 안 터지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의 연속


매일 상황에 따라 '어떡하지'는 달라지지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면 이렇다. 테이블 위 모퉁이 쪽에 그릇이나 컵이 있으면 떨어질까 봐 불안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받고 자리로 향할 때 갑자기 내 다리가 꼬여서 (그럴 일 없겠지만) 넘어지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공중 화장실이나 식당 화장실을 이용할 때 갇히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학창 시절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출근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 모습이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생각했는데 이때만 해도 내가 쓸데없이 상상력이 풍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라 여겼다. 친오빠와 살 때는 늘 공항으로 출근하는 오빠가 걱정이었다.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운전하다가 사고 나면 어떡하지, 오빠야 차는 경차라 더 위험할 텐데.. 어떡하지' 불안했다. 내가 출근할 때면 (거의 매일) '버스 타고 가다가 추락하면 어떡하지, 죽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버스가 추락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걱정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을 남들도 다 하는 줄 알았다. 내겐 일상이고, 매일같이 하는 생각이니깐. 


하루는 친오빠와 장을 보고 들어가는 날이었다. 오빠는 한 손에 (끈으로 고정된) 달걀 한 판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달걀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오빠의 걷는 걸음마다 달걀들이 탁. 탁. 탁. 떨어지고 복도 바닥에는 흰자와 노른자, 달걀 껍데기가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복도가 달걀판이 되기 전에 오빠를 말려야 했다. 


(다급하게) "오빠야X2 계란 양손으로 들어라" 

(나지막이) "개안타"


(오빠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며)"아니, 한쪽으로 너무 쏠렸잖아.. 계란 다 떨어질 거 같다아...(나도 짐을 들고 있었지만) 내가 들게."

(한번 더 나지막이) "개안타니깐"


(초불안 상태) "안 개안타.. 제발 양손으로 들어라 다 깰 거 같다.. 엘리베이터에 다 떨어뜨리면 어뜩해... 내랑 바꿔들자.."

(결국 참지 못하고) "개.안.타.고!"


나의 호들갑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달걀이 집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됐다. 

그리고 마지막 오빠의 말. 


"(성질 아니고 씅질내며) 우이씨, 내가 정신병원 빨리 가보라 했제!"


빵 터졌다. 그 와중에 오빠 말대로 달걀은 주방까지 '개안케' 도착했다. 식탁에 달걀을 무심히 툭 내려놓으며 이어지는 오빠의 말 


"예약했나 안 했나, 빨리 가래이!" 

"ㅋㅋㅋㅋㅋㅋ 어 아라따" 


가끔 이렇게 훅 들어오는 오빠의 말은 나를 웃게 하고, 깨달음을 준다. '아 이것도 불안 증상 중 하나구나?' 하루는 공황증상을 겪고, 오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죽을까 봐 무서운 적 없는지, 비슷한 증상 겪어본 적 없는지. 오빠는 짧고 굵게,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당장 정신병원 가라."




그렇게 정신의학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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