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의 목적지는 말라가였다.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의 지중해에 맞닿아 있는 휴양도시로 내가 원하던 '11월에도 따뜻한 유럽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말라가 기차역(Málaga María Zambrano Train Station)에 내리는 순간부터 마드리드 보다는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라가 기차역은 현대식 건물로 내부에 쇼핑몰과 식당 등이 있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말라가 버스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de Málaga)은 3일 후에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를 탈 곳이어서 들러보고 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의 입구는 기차역 쪽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었다. 기차역에 비해서 오래된 건물은 한국의 예전 버스터미널을 떠올리게 했다.
숙소를 향해서 걸어가는 길에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맑고 따뜻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말라가 기차역(위)과 버스터미널(아래)
말라가 아파트에서 장을 봐서 이틀을 살다.
숙소는 기차역에서 도보 7분 거리에 있었다. 스페인의 거리는 돌길이 많아서 캐리어 바퀴가 덜거덕 거리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캐리어 끌기가 너무 힘드니 가까운 거리도 볼트를 타라는 여행 후기가 생각났다. 나는 배낭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몇 개의 대형 슈퍼마켓도 눈여겨보았다.
도착하는 날 오전에 집주인에게 받은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각각 분리된 침실과 욕실이 있었고 거실과 연결된 주방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는 아파트였다.
말라가는 해변 도시이지만 바닷가에 숙소가 많지 않았고 오션뷰 호텔들은 나의 예산을 초과하는 높은 가격대에 있었다. 이 숙소도 위치에 비해서는 가격대가 높았지만 내가 머무는 날이 11월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이어서 더 좋은 방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조리도구와 식기 그리고 양념까지 모두 갖춰져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능하면 현지의 마켓에서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날 슈퍼마켓에서 소고기, 버섯, 사과, 맥주, 우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과자, 빵을 사는데 2만 원이 조금 넘게 들었다. 한번 장을 본 걸로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과 저녁 그리고 둘째 날 아침까지 총 4끼를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짐을 쌀 때부터 간단한 옷은 현지에서 사서 입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집 근처 쇼핑몰 Centro Comercial Larios Centro에 있는 Pull&Bear에서 바지 하나와 Primark에서 반팔 티셔츠 하나를 샀다. 가격은 한국의 할인점보다 조금 더 싼 편이었다. 둘째 날 저녁 새로 산 옷들과 그때까지 입던 옷을 숙소 싱크대에 설치된 드럼세탁기로 빨래를 했다.
숙소가 있던 골목(오른쪽부터 흰색 건물이 숙소, 골목 끝의 성당, 발코니에 드레스가 걸려있는 맞은편 건물)
동네를 산책하던 중에 앤디 워홀의 작품을 만나다.
집을 둘러보고 짐을 푼 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지도를 보니 숙소 남쪽에 가장 가까운 바다가 있었다. 10분 정도를 걸어가면서 보니 숙소 남쪽은 컨테이너선이 머무는 항구였다. 내가 원한 것은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었다.
과메디나강(Guadalmedina)은 말라가를 남북으로 지나간다. 기차역과 숙소는 강의 서쪽에 있었고 대부분 관광지와 해변은 강의 동쪽에 있었다. 남쪽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서 동쪽을 향해서 걸었다.
다시 10분 정도 걸어서 과메디나강을 건넜을 때 거대한 창고처럼 보이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있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현대미술과 스페인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말라가 CAC 현대미술관(CAC Málaga)이라고 나왔다. 입장료는 없었으며 들어갈 때 국적만 물어봤다.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면서 넓은 공간과 큰 미술 작품들이 나왔다.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없었지만 CAC 말라가의 현대미술을 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현대미술을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도 있었다.
말라가 CAC 현대미술관
지중해 해변을 모래사장을 거닐다.
미술관을 나와서 말라게타 해변(Playa la Malagueta)을 향해서 걸었다. 서서히 유람선과 요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독특한 형태의 흰색의 해변 산책길 구조물(Palmeral de Las Sorpresas)이 보였다. 이전에 말라가 여행 영상에서 소개한 것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말라게타 해변에 도착하니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해변에는 비치펍과 카페들이 많았다. 야자수가 있는 지중해의 백사장은 바로 처음 내가 여행을 계획할 때 원했던 바로 그 경치였다.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1월 중순 낮시간 말라가의 날씨는 그늘은 선선하지만 햇빛이 쬐는 곳은 살짝 더운 정도였다. 나도 얇은 긴팔 티셔츠를 벗고 안에 입었던 반팔 면티만 입은 채로 해변을 걸었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 니스(Nice) 해변을 걸었을 때가 생각났다. 말라가는 백사장이고 니스는 몽돌 해변으로 많이 달랐지만 말라가 이외에 유일하게 가본 지중해 도시가 니스여서 그랬던 것 같다.
말라게타 해변, 앞에 푸른 바다는 지중해
이후는 말라가의 유명 관광지 주변을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말라가 슈퍼마켓에서 사 온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말라가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 말라가의 중요한 장소들 (2023년 11월 기준) 』
기차역에서 CAC 말라가 현대미술관까지 도보 11분, CAC 말라가 현대미술관에서 말라게타 해변까지 도보 25분이 걸린다.
말라가 대성당, 피카소 미술관, 메르세드 광장, 알카사바 등은 모두 가까이 있어서 걸어 다니기에 좋다. 사실 그 사이를 다니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