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도심에 있는 넓은 공원들 때문이다.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공원과 광장이 그 도시의 이미지로 기억될 때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변수가 생겨서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레티로 공원(Paraque de El Retiro)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레티로 공원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그 안에 크리스털 궁전(Palacio de Cristal), 벨라스케스 궁전(Palacio de Velázquez), 레티로 호수(Estanque Grande de El Retiro) 등이 있다.
어제 밤늦게 도미토리로 들어온 손님이 코를 심하게 골아서 잠을 설치고 마드리드의 둘째 날을 맞이했다. 해가 뜨기 전에 레티로 공원에 가기 위해서 호스텔의 1층 카페로 바로 내려갔다. 브런치 뷔페처럼 다양한 빵과 커피, 햄과 치즈, 계란과 과일 등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 레티로 공원으로 걸어갔다. 레티로 공원 입구까지는 도보 5분 거리였다. 레티로 공원은 오래된 역사만큼 큰 나무들이 많아서 첫인상은 공원보다 숲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아침을 맞이한 나에게 마드리드는 큰 숲을 가진 도시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공원이 어둡지는 않았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공원에는 아주 큰 대형견이 많았는데 가까이 오면 살짝 긴장하게 만드는 크기의 대형견들도 입마개를 한 경우는 보지 못 해다. 가끔은 마음껏 달릴 수 있게 풀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길거리에서도 대형견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해가 떠오르는 황금빛 크리스털 궁전을 보다.
레티로 공원에 해가 뜨기 전에 간 이유는 그 시간에 크리스털 궁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크리스털 궁전은 동쪽을 향해서 앞쪽에 작은 연못을 두고 있는 외관을 유리로 만든 궁전으로 해가 뜨는 시간에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침 시간이라 들어가 볼 수는 없었고 궁전과 호수 주변을 따라서 산책을 했다. 궁전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잠시 뒤 공원의 무성한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르면서 숲 속에 숨어있는 연못 위로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궁전을 볼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그림 같은 경치가 이런 걸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시간을 아깝지 않게 만들어 주는 광경이었다. 잠시 멈춰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사진에 담았다.
벨라스케스 궁전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로 주로 전시회장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크리스털 궁전은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져 있고 벨라스케스 궁전은 벽돌과 타일로 만들어져 재료에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반면에 두 궁전의 구조는 중앙 입구 위에 큰 돔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대칭이 되는 작은 돔과 지붕이 있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레티로 호수에 도착할 때는 9시가 넘었다. 서서히 단체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부지런 것은 한국인과 한국 여행사만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에 본 단체 관광객 두 팀은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호숫가의 알폰소 12세 기념비(Monumento a Alfonso XII)와 트리톤을 타고 있는 인어(Sirena que cabalga sobre un Tritón) 동상 앞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왼쪽 세로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레티로 공원, 크리스털 궁전, 벨라스케스 궁전, 레티로 호수
다음을 기약하며 프라도 미술관을 지나치다.
레티로 호수 쪽의 공원 출입구로 나와서 대로를 건너니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이 있었다. 처음 여행을 생각할 때 시간이 되면 티켓을 구매해서 가보려고 했던 곳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입장하는 줄과 별도로 있는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줄도 길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3대 미술관중 하나라고 하며 사전 예매는 필수라고 나왔다.
나는 여행 중 여유가 있을 때 미술관에 가는 것을 즐기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가장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 미술관에 들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밤 마드리드 0Km 표시를 밟았기 때문에 다시 마드리드에 올 것이라며 그때는 프라도 미술관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남은 시간은 마드리드 거리를 구경하며 골목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시간 전부터 길게 줄 서있는 사람들
마드리드 거리에서 한국의 편안함을 느끼다.
하루를 채 머물지 않았는데 완전히 다른 외모의 사람들과 유럽식 건축 양식의 건물이 있는 마드리드 거리에서 뭔지 모를 한국과 비슷한 편안함을 느꼈다.
무엇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떠올랐다. 먼저 거리가 깨끗한 편이었다. 내가 본 건 마드리드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지만 잘 정비가 되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친절했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서 영어로 길을 물어보았는데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려고 했다. 안전하다고 느꼈다. 훔쳐갈 것이 없어 보였을 수도 있지만 길을 찾느라고 폰을 보면서 걸어 다녀도 소매치기는 만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개인적인 느낌이니 항상 조심하는 것이 더 좋기는 하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했다. 버스는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했고 현금을 내면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구글맵으로 이동경로와 교통편의 도착 예정시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전날의 걱정은 어느 정도 줄어들고 스페인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iryo를 타고 마드리드를 떠나다.
숙소로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서 아토차역으로 갔다. 아토차역은 보안검색을 하기 때문에 미리 가야 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보안검색을 마칠 수 있었다. 출발하기 20분 정도 전에 열차를 탑승할 플랫폼이 표시되면 갑자기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 플랫폼의 줄이 두 줄이 되었다가 세줄이 되기도 하면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순서대로 움직였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고속열차는 AVE와 iryo가 있는데 KTX와 SRT처럼 운영하는 회사가 다르다. 그중에서 iryo를 탔는데 표를 예매할 때 좌석을 선택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천천히 열차에 올랐다. 열차의 내부는 SRT와 비슷했는데 앞뒤간격은 조금 더 넓었다. KTX가 초기에 프랑스의 TGV 기술을 이전받았다고 했는데 고속열차의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한 것 같았다. 대부분 작은 짐은 선반 위에 올려두었고 체인으로 묶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 기차를 탈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도 선반에 백팩을 올려두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계속 쳐다보았다.
짧은 마드리드의 여행이 끝나며 열차가 말라가를 향해서 스페인 남부로 출발했다.
『 스페인 아토차 역의 철도 (2023년 11월 기준) 』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안 검색대, 탑승열차 안내 화면, iryo, renfe
아토차역의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먼저 보안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짐은 따로 엑스레이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열차를 탑승하는 플랫폼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TV가 천장의 여러 곳에 달려있다. 출발시간 20분 전에 탑승 정보가 화면에 나온다.
화면을 보면 renfe(AVE, Alvia, Avant)와 iryo가 있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renfe는 철도공사처럼 국토 전역에 다양한 노선을 운영하는 철도회사이고 iryo는 SRT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