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둘째 날 아침은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호텔 조식을 먹었다. Petit Palace Vargas의 식당은 관광지 호텔보다는 마드리드 호스텔의 조식을 먹은 곳에 가까웠다. 조그마한 카페처럼 꾸며진 식당에서 브런치 뷔페처럼 빵, 햄, 치즈, 요구르트 등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차이점은 디저트 메뉴가 훨씬 다양하고 맛있었다.메뉴에 맞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예약할 때 조식을 포함하지 않은 경우는 객실 번호를 알려주고 체크아웃 시 지불하면 되었다.
식사 후 말라가의 둘째 날과 같이 내가 가지고 있던가장 단정한 옷을 갖춰 입고 호텔을 나섰다. 세비야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세비야 대성당은 날자와 시간대에 따라서성당 내부의 미사를 보는 위치가 달랐다. 세비야 대성당 홈페이지에서 미사 시간과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세비야 대성당에는 남쪽과 북쪽에 각각 큰 출입문이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문을 둘러싼 조각을 포함하면 둘 다 압도적인 크기였다. 성당이 얼마나 거대하면 문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싶었지만 건축 당시의 강력한 종교적인 힘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았다. 먼저 남쪽에 있는성모승천의 문(Puerta de la Asunción)으로 갔다. 문이 열려 있어서 앞에 있는 경비원에게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미사 장소가 달라도 성당 내부는모두 연결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의 미사 장소가 가까운 반대편 문으로 가라고 했다. 성당 외벽을 따라서 반대편에 있는종들의 문(Puerta de Campanillas)으로 갔다. 종들의 문 앞에 있는 경비원에게 미사를 왔다고 하니 장소를 알려주며 들어가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오래되었지만 관리를 잘 받으며 세월을 견뎌온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성모상 위에 'PERMEREGESREGNANT'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둥근 천장 아래가 미사 장소였다.수녀님들의 성가는 없었고 신부님들의 주도로 30분 정도 미사가 진행되었다. 미사가 끝나고 보니 더 큰 다른 미사 장소가 보였다. 내부 좀 더 보기 위해서 들어가려고 하니 경비원이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나가달라고 했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꼭 봐야 한다는콜럼버스의 청동 관(Tumba de Cristobal Colon )은 보지 못했다. 스페인 광장과 함께 세비야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세비야 대상성당의 외관(위쪽)과 내부(아래쪽)
세비야 미술관에서 세비야를 다시 보다.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하고 리셉션에짐을 맡겼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가볼 만한 곳을 찾으니세비야 미술관(Museo de Bellas Artes de Sevilla)이 있었다. EU 국가의 시민들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입장권을 구매해서 들어갔다.
우선 눈길을 끄는 건 건물의 아름다움이었다. 입구를 들어가면 붉은색과 흰색이 함께 있어서 분홍색을 띠고 있는 듯한 벽과 흰색 기둥들로 둘러 쌓인 정원이 보였다. 스페인 건축의 특징인지 안달루시아 건축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그라나다와 세비아에서는 안뜰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관람하는 순서대로 동선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시대순으로 전시된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세비야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종교와 관련된 그림과 조각이 주를 이룬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사람과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많아졌다. 세비야의 예전 모습을 그린 그림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알폰소 13세 운하(Canal de Alfonso XIII) 건너편에서 바라본 황금의 탑(Torre del Oro)을 그린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황금의 탑 뒤로는 세비야 대성당이 정말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탑이었는데 너무 가까이에서 지나가느라 그 경치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에 세비야에 다시 오면 해질 무렵 운하 반대편인 서쪽에서 석양이 비치는 황금의 탑과 세비야 대성당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Metropol Parasol에서 바라본 석양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세비야 미술관의 안뜰(위쪽), 황금의 탑과 세비야 대성당이 있는 1893년 세비야 전경을 볼 수 있는 풍경화(아래쪽)
출발 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이 보이는 가까운 위치의 호텔은 도시를 이동하며 잠시 머물기에 최고였다. 이번에는 스페인을 떠나서 포르투갈의 휴양 도시인 알부페이라(Albufeira)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시간을 쪼개서 세비야를 더 보고 싶었지만 터미널에 30분 전에 도착했다. 버스가 연착한다는 불만도 많았지만 반대로 몇 분 전에 미리 출발을 해버려서 놓쳤다는 후기도 봤기 때문이다.
다른 버스들은 출발시간 20~30분 전에 매표소 위의 화면에 버스를 타는 플랫폼 번호가 표시되었다. 하지만 알부페이라를 가는 Alsa 버스는 10분이 남았을 때까지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마음이 불안해져서 매표소에 물어보니 플랫폼 하나가 아니라 몇 번에서 몇 번 사이로 가보라고 했다. 그 위치로 가보니 물어볼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버스 기사님에게 포르투갈 알부페이라를 가는 버스는 어디에서 타는지 물어보았다. 알려준 대로 두 칸 옆의 플랫폼에 가보니 15명 내외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모두 포르투갈로 가는 것은 맞지만 도착하는 도시가 알부페이라(Albufeira), 파로(Paro), 리스본(Lisboa) 등으로 다양했다. Alsa 버스를 예매할 때 노선 번호가 아니라 탑승하는 버스의 고유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알부페이라로 간다고 해서 버스 번호를 물어보니 나와 동일해서 안심이 되었다.
잠시 뒤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출발 시간이 되었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서로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동일한 버스인지, 이 플랫폼에 그 버스가 오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20분이 지났을 때 내 앞에 있던 알부페이라로 간다고 했던 사람이 매표소에 물어보고 올 테니 짐을 좀 지켜달라고 했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서 거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잠시 뒤에 돌아와서 매표소에서도 "버스가 언제 오는지는 잘 모르니 그냥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출발 시간의 30분이 지났을 때 너무 조바심이 났다. 국경을 넘어가는 버스가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지도앱을 열어서 회사이름을 검색하니 본사 위치가 나왔다. 본사를 선택하니 홈페이지 링크가 나왔고 거기서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받으니 스페인어로 받았다.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영어를 못 한다고 했다. 주변에 영어를 하는 직원이 없냐고 물어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없다고 했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타는 버스회사 고객센터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사실 30분이 넘도록 버스가 오지 않는 상황이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는데 사실 거기는 스페인이었고 스페인어를 못 하는 나의 잘 못이었다. 내 앞의 3개 언어를 말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넘겨주며 통화를 부탁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토요일 오후라서 세비야 주변의 도로가 꽉 막혀서 그런 것 같다."라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센터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말에 교통이 막히면 예비 버스를 준비하던가 최소한 터미널 내에 안내 방송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너무 무책임하고 답답하다고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던 스페인 사람이 한국에 대해서 좀 안다는 듯이 "모두가 한국과 같은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규칙대로 움직이고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해결하는 한국처럼 다른 모든 나라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건 칭찬인지 새로운 종류의 차별인지 헷갈렸다. "여기서는 클레임을 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자기는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겠다. 지금은 그냥 다음 여행을 생각하며 기다리겠다."라고 했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그는 이러한 상황이 처음이 아닌 듯이 보였다. 한국 방송에 나오는 독일인이 "한국에서는 공공 기관과 시설물이 시간을 정말 잘 지킨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개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만 열차나 버스가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버스 한 대가 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파로, 알부페이라, 라고스로 가는 사람들은 모두 타라고 했다. 이 버스는 Alsa와 rede expressos 마크가 모두 달려 있었다. 버스 앞에 교체 가능한 노선 표시에는 rede expressos 안내판에 "Sevilla > Lagos"라고 적혀 있었고 버스번호도 내가 예매한 표에 있는 것과 달랐다. 버스기사분에게 내 표를 보여 주면서 버스의 번호가 다르다고 물어봤지만 알부페이라에 간다면서 타라고 했다.
버스에 타고 보니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세비야 주변에 교통이 많이 막혀서 늦은 게 아니라 버스 한 대에 40명이 넘게 탈 수 있는데 내가 기다리던 버스를 예매한 사람이 15명 정도였고 이 버스를 예매한 사람이 15명 정도여서 버스를 채워서 가기 위해서 먼저 출발하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버스는 파로 공항, 파로 시내에 들러서 승객 일부를 내려주고 알부페이라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 지난 후였다. 깜깜한 알부페이라 버스터미널 밖으로 나가면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정말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예약할 때 지연과 취소에 대한 불만을 많이 보았었다. 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할 때와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이동할 때 시간을 너무 잘 지켰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불만족 후기에 있는 그대로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세비야 버스터미널, 탑승할 터미널이 표시되는 모니터, 나의 버스표, 긴 플랫폼, 한 시간 뒤에 도착한 다른 버스, 이미 어두워진 알부페이라 버스터미널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는 버스회사였다.
정상적으로 운행이 된 이전 두 개의 운행은 만족도 조사 이메일이 왔었다. 놀랍게도 한 시간 이상 늦어서 다른 버스를 타야 했던 이번에는 만족도 조사 이메일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두 번째 만족도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세비야에서 알부페이라로 이동하는 버스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은 후 실제 발생했던 이야기를 모두 적었다.
만족도 조사를 보고 Alsa에서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첫 번째 메일은 내가 Alsa 웹사이트가 아니라 rede-expressos 웹사이트에서 표를 구매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Alsa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한 내용을 캡처해서 회신을 보냈다.
두 번째 답장은 더 특이했다. Sorry라는 표현을 썼는데 앞에 이메일이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버스가 한 시간 이상 늦어지고 다른 버스를 이용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Alsa에서 예약한 것을 rede에서 예약했다고 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승객들은 모두 목적지에 잘 도착했고 서비스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적지 않은 채로 불편을 끼쳐서 미안하고 다음에는 최상의 만족을 제공하겠다고 적어 두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유럽의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면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볼 것이라 생각했다.
세비야의 버스터미널에서 들었던 "여기는 클레임을 걸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도시를 이동하는 버스 (2023년 11월 기준)』
유럽에서 도시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은 항공기, 열차, 버스, 렌터카 등 다양하다. 직접 운전을 하는 렌터카를 제외하면 가장 노선이 많은 것은 버스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많이 이용하는 버스는 Alsa와 Flix가 있다. 여행 중에 Alsa 버스를 세 번, Flix 버스를 한 번 탑승했었는데 버스의 높이와 좌석의 배치 등 크기는 비슷했다. 품질도 회사에 따라서 다르다기보다는 노후화된 버스를 탑승한 경우에 후기가 나빠지는 것 같다. 시간대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요금도 비슷하고 미리 구매를 하면 할인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어느 회사의 버스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별로 탑승한 버스에 대한 후기에 가깝다. 회사별로 출발시간이 다르고 같은 도시에서도 버스 회사에 따라서 탑승하는 터미널이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시간과 위치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통합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면 서로 다른 회사의 버스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하자만 할인 가격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Alsa와 Flix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면 시기에 따라서 50%의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구글 맵에서 검색해서 리뷰를 보면 두 회사 모두 늦게 도착하거나, 예약한 차가 오지 않아서 다음 차를 타거나, 출발 시간 전에 차가 출발해 버리는 등 버스를 예약한 시간에 타지 못 했다는 불만이 많다. 거기에 더해서 안내가 없거나 고객센터가 제대로 응답을 하지 않아서 불만은 더 커진다.
저녁에 도착하는 버스보다는 지연에 대비해서 오전에 출발해서 낮 시간에 도착하는 버스를 추천하며 시간이 중요하다면 버스 이외의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