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를 향해서 서쪽으로 떠나다.
세비야(Sevilla, 세비아)는 스페인의 유명 관광지 중에 한 곳이지만 최초의 여행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세비야에 가더라도 말라가에 머물면서 잠시만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라나다에서 알부페이라를 향해서 서쪽으로 가는 길의 중간 위치에 세비야가 있어서 1박을 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계획을 수정했었다. 세비야는 많은 매력을 지닌 도시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세비야의 버섯(Las Setas de Sevilla)이라고 불리는 매트로 파라솔(Metropol Parasol)이었다. 하루를 머물기 때문에 야간에 조명이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사실 창이 없는 방이라 밝아지지는 않았다. 공용 욕실 바로 앞의 방이라 다른 방 손님들이 욕실을 사용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부터 빠르게 준비하고 모두가 나갔기 때문에 여유 있게 욕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를 나섰다.
세비야로 가는 버스는 말라가에서 타고 온 버스를 내렸던 그라나다 Alsa 터미널(Estation de Autobuses de Granada)에서 타면 되었다. 지도앱에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을 검색하니 가까운 공항버스 정류장과 함께 총 세 곳의 위치가 나와서 잠시 당황했지만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버스를 내렸을 때 그 위치를 지도앱에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었다.
세비야로 가는 버스를 탈 때 짐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버스표를 구입할 때 보니 짐이 많으면 추가 비용이 있었는데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화장실이 설치된 버스였지만 화장실 문은 잠겨 있었고 중간에 화장실과 식당이 있는 휴게소에 한번 들렀다. 바깥의 경치도 그라나다로 올 때와 비슷했다.
호텔 자전거로 세비야를 달리다.
세비야에서는 하룻밤만 숙박을 하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데 편리한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호텔을 선택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밖으로 나가니 대각선 길 건너편에 바로 Petit Palace Vargas 호텔이 보였다.
예약할 때 안내된 시간보다 조금 전에 도착했지만 체크인이 가능했다. 리셉션의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추가 비용을 내면 발코니가 있는 방이나 조식 포함으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서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잠만 잘 것이었기 때문에 발코니 방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조식은 추가를 하겠다고 했다. 조식 비용은 체크아웃을 할 때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방은 작은 침실과 욕실이 전부였다. 방에 짐을 두고 곧장 리셉션으로 다시 내려왔다.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 중에서 하나인 로비에 있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였다. 보증금 300유로에 무료 대여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보았었는데 실제로 보증금을 내거나 카드로 보증금을 결제하고 자전거를 반납하면 환불받는 방식은 아니었다. 고장이 발생할 경우 최대 300유로를 지불한다는 계약서에 카드번호를 적고 서명만 하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호텔옆 강가로 나갔다. 정확히는 강에서 살짝 벗어난 알폰소 13세 운하(Canal de Alfonso XIII)였다. 지도앱으로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을 목적지로 하고 강가를 따라서 달렸다. 강가를 달리는 도중에 독특한 모양의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황금의 탑(Torre del Oro)이었다. 지도앱에서는 10분이 걸린다고 나왔는데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거의 두 배인 20분이 지나서 도착했다. 그런데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에서 하나라는 스페인 광장은 공사 중으로 막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2019년에 런던에 갔을 때는 빅뱅이 수리 중이었고, 파리에 갔을 때는 노트르담이 화재로 인한 보수 중이었다. 이럴 때는 '그냥 다음에 올 때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자전거를 타고 마리아 루이사 공원(Parque María Luisa)에 있는 아메리카 광장(Plaza de América) 등 을 좀 더 돌아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온 김에 세비야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메트로 파라솔까지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을 지나갔는데 말라가나 그라나다의 대성당보다 더 크게 보였다. 그라나다 대성당은 예배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세비야 대성당은 말라가 대성당처럼 지금도 예배를 위해서 사용된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도 처음에 지어진 목적을 유지하는 건축물은 항상 더 매력적이었다. 메트로 파라솔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새롭다'가 전부였다. 세비야의 태양 아래로 거대하고 이색적인 흰색 구조물이 보였다. 해 질 무렵에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란 멜리아 콜론(Hotel Colón Gran Meliá)이라는 5성급 호텔의 앞에는 검은 승용차와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보였고 엄청난 인파가 모여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리셉션의 직원에게 오는 길에 호텔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무슨 일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유명한 가수가 그 호텔에 온다고 해서 팬들이 모여있는 것이라고 했다. 큰 행사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스페인 광장에서 공연이 있다고 했다. 내가 낮에 스페인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공사를 위해서 막은 것이 아니라 'Santalucia Uneiversal Music Week'라고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표는 한 달 전에 판매가 끝났다고 했다. 말라를 갔을 때는 재즈 페스티벌 기간이었고 세비야에 오니 뮤직 위크 기간이었다. 스페인에는 연중에 계속 음악 행사가 많은 것인지 11월에 음악 행사가 몰려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서 중지된 행사들이 연속해서 열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로 강가를 달려서 스페인 광장에만 다녀올 생각으로 호텔을 나섰는데 꽤 짧은 시간에 세비야 시내를 돌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메트로 파라솔로 다시 가기로 했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호텔 자전거가 서있는 알폰소 13세 운하, 공연장으로 설치로 들어갈 수 없던 스페인 광장, 마리아 루이사 광장의 민속 예술 박물관
세비야의 버섯, 메트로 파라솔의 매력에 빠지다.
해질 무렵에 매트로 파라솔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서 호텔에서 나왔다. 아직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흰색 구조물의 일부가 저물어 가는 햇빛에 반사되어 노랗게 보였다.
메트로 파라솔 위의 전망대로 가는 길은 0층에서 시작되었다. 입장권이 15유로였는데 밖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입구에 도착해서야 가격을 알았지만 세비야에 온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입장권을 샀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망대를 모두 본 뒤에는 15유로가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안내하는 직원이 세비야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는 곳을 알려준다. 영상을 먼저 봐도 되지만 전망대를 돌아본 이후에 내려오는 길에 영상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일몰 시간이 가까워져서 전망대를 먼저 보기로 했다. 메트로 파라솔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가야만 한다. 거기서 일몰과 어두워진 이후 조명에 빛나는 전망대를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실제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던 나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세비야의 도시 위로 서서히 붉게 물든 석양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메트로 파라솔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 아주 희미했다. 점점 하늘에 붉은색이 줄어들고 검푸른 색이 넓어졌다.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던 잔잔한 음악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렸다. 음량을 높인 것인지 저녁이 되면서 주변이 조용해져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Metro Parasol의 조명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면서 흰색의 구조물이 조명의 색에 따라서 변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푸른색, 초록색, 붉은색, 보라색 등 단색으로 비치던 조명이 시간이 지나자 한 번에 다양한 색으로 반짝였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대성당을 지금 우리가 바라보듯이 몇 백 년 후에 사람들이 이 건축물을 바라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거기에 있었지만 지루하지가 않았다. 내려가기 싫다는 아쉬운 생각을 접고 전망대를 내려와서 세비야 소개 영상을 보러 갔다. 세비야의 도시, 건축물, 음식, 플라멩코 등을 소개하는 상당히 고품질의 영상을 에필로그처럼 보았다.
메트로 파라솔에서 내려왔지만 그냥 가기가 아쉬웠다. 광장 남쪽에는 지도앱에서는 보이지 않는 식당들이 있었다. 'MANÁ MANÁ SEVILLA'이라는 식당은 'Metro Parasol'이 가장 잘 보이는 노천 테이블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타코와 함께 클라라 맥주 한잔을 마시며 조명으로 빛나는 Metro Parasol을 한참 더 바라보았다.
시각적 만족이 충분해졌을 때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세비야의 첫날이 지나갔다.
시간에 따라서 달라 보이는 세비야의 버섯 Metro Parasol 전망대(왼쪽)와 외관(오른쪽)
『 Metro Parasol 소개 (2023년 11월 기준) 』
Metropol Parasol은 스페인 세비야의 엥카르나시온 광장(plaza de la Encarnacion)에 있는 높이 26m의 건축물이다. Metro Parasol은 6개의 버섯 모양 건축물이 이어진 구조여서 세비야의 버섯(Las Setas de Sevilla)이라고도 불린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360도 세비야 전경과 LED 쇼를 볼 수 있다.
1층 광장과 전망대에 사람들이 보이는데 1층으로 가도 전망대의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1층에서 계단을 내려가서 무어 유적 박물관이 있는 0층으로 가면 입구가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일반 입장권 가격은 15유로이다. 18세에서 25세 사이의 EU학생, 65세 이상의 스페인 은퇴자, 그리고 6세에서 14세 사이의 어린이 그리고 장애인은 12유로로 감액된다. 5세 이하 어린이와 세비야의 주민 등은 무료이다.
메트로 파라솔은 독일 건축가인 위르겐 마이어(Jürgen Mayer)의 설계로 2011년 4월에 완공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목조 건물이 어떻게 습기와 외부물질로부터 보호되고 있는지는 내려오는 길에 알 수 있다. 폴리우레탄 코팅으로 보호한다는 설명과 함께 단계적으로 폴리우레탄 코팅이 되어있는 나무 조각이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