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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shin Aug 30. 2024

거꾸로 읽어도 술술 읽혀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돌아가시기 한 해전 치매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혹여나 오래간만에 본 딸을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병실 문을 들어서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저 사는 것에 급급해 무심했던 딸, 어제 본 듯 으시면서 미국서 온 딸이라고 병실에 계신분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셨다.


멀리서 온 딸을 기쁘게 해 주시고자였을까, 어린아이가 되어 책 읽는 자신을 뿌듯해 하시며 자랑하고자 함이셨을까.  


양로병원 침대에 앉아 두꺼운 성경을 꺼내어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셨다. 벽에 걸려있는 TV에서는 지적인 외모의 뉴스앵커가 똑 부러진 발음으로 세상 여기저기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던 중이었다. 점점 페이드아웃되면서 앵커의 그 똑 부러진 목소리도 엄마의 성경 읽는 소리에 파묻혀버린다. 어느새 내 귀에는 엄마의 우물우물 입으로 읽으시는 소리가 앵커의 그 찰진 말보다 더 분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다가 말씀드렸다.


"와우! 엄마! 진짜 잘 읽으시네!"


피곤하신지 성경을 덮고 서랍밑에 넣으시고 누우셨다.


엄마는 성경책을 거꾸로 들고 읽으셨다. 나는 굳이 성경을 바로 해드리지 않았다. 엄마는 글을 모르시는 분이시다. 교회생활을 하시면서 글을 조금씩 배워가셨지만  빽빽한 글씨로 차있는 성경을 읽으시기엔 평생 무리셨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종종 성경을 읽어달라고 말씀하셨고 나 또한 기회 될 때마다 읽어드렸다. 대학생활, 직장생활, 계속 떨어져 살아서 그리 많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럴 때마다 폭풍감탄 하시며 칭찬하셨다.


"야아아! 너는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읽니! 진짜 대단하다!"


사실 나는 글을 잘 읽었다. 아파 누워도 목소리만큼은 아픈 게 믿기지 않는다고들 한다. 키가 작아 항상 앞줄에 앉았어도 반 전체에 울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선생님들이 내게 읽기를 시키신 적이 종종 있었다. 가끔씩 감정까지 실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피곤해지고, 들으시는 엄마가 졸려서 주무셔야 마치는데, 엄마는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해지시면서 성경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시곤 하셨다.  


더듬거리시며 뭔뜻인지도 잘 모르는 글이지만  혼자서도 읽으셨던 성경을  딸 앞에서 그렇게 읽으셨다. 성경책을 거꾸로 들고.  그렇게 나는 평생 들었던 엄마의 칭찬을 내가 엄마에게 해드렸던 것이다. "엄마, 너무 잘 읽으신다고..." 엄마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딸"이라고 칭찬해 주신적도 많다. " 입어도 항상 이쁘다고",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그런 칭찬도 매번 진짜로 뭘 입어도 항상하셨다.  미국에 방문하셨을 때 내가 운전할 때마다 엄마는 거의 앞을 보지 않으시고 운전석에 앉은 딸을 옆으로 보시며 가셨다. 


"뭘 그리 봐, 엄마!"

"이뻐서, 우리 딸 이뻐서!"  


우리 딸이라는 그 딸은 이쁜 구석 하나 없는 40대 노처녀였는데.  엄마눈엔 이쁘게 보인다니 일단 접수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아니 그런 마음들이 인생을  살만하게 한 것이다.


성경책을 거꾸로 들고 읽으셨던 그 다음해에  엄마는 계시던 양로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한국에 나가 장례식만 치르고 엄마의 성경책을 들고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 형제들 중 가장 많은 자식이다. 멀리있다는 핑계로  하지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잘못한 것들로 기억나기보다는 마음에 빚진 것들, 부모에게 빚지고 형제에게 빚진 것들, 그 사랑의 빚이 한없이 생각나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많이 울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답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이 있고, 이상한 외래어처럼 우물우물거려도 그게 무슨 뜻인지 들려지기도 한다.  내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의 수고들에 대한 미처하지 못한 감사의 말들. 나는 믿는다. 마음으로 담아내면 술술 읽힐 것이라고. 들려질 것이라고. 꼭 읽히고 들려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렇게 개떡같이 서툰 글이라도 쓴다.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며, 거꾸로 읽어도 술술 읽혀질 글이 언젠가 써질날이 올것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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