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까 Jan 04. 2018

내집은 어디인가

신혼부부 분가 이야기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모잠비크에서 지낸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숙소를 몇 번이나 옮겼는지 모른다.


모잠비크에 도착한 후, 우리가 참여하기로 한 사업 지역에 가기 전에 수도인 마푸토에서 서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거처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고, 사업 지역인 마링게에 도착해서도 최종 목적지인 굼발란사이까지 데려다 줄 차량이 없어 또 다른 임시 거처에서 몇 주를 더 머물렀다. 


우리가 지낸 곳이 산속 깊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필요한 것을 사고 통신도 이용할 겸 주말에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보다 큰 마을로 나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를 데려다 줄 차를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또 임시거처에서 지내야 했다.


2개월이 지난 시점, 마푸토에서 이 지역을 지나는 도로를 통제하고 총격이 일어나는 등 내전 발발 위험이 있어 외국인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우리가 새로 시작할 사업이 정해지기까지 또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했고, 새로 옮긴 곳에서도 제대로 된 숙소에 정착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비어있는 곳에서 잠시 생활해야 했다.


이렇게 기약 없는 임시거주가 계속되니 짐은 정리도 못한 채 여행가방 그대로 옷장처럼 사용했었고, 마침내 거주지가 확정된 날에는 드디어 정착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일인지 실감했었다.


6개월, 1년, 짧게 기간을 정해 외국에 거주하고, 여러 도시로 목적지를 바꾼 여행을 하다 보니 어디가 내 집인지, 한 군데를 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건데 굳이 예쁘게 꾸밀 필요도, 돈을 들여 이것저것 사들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결혼도 했지만 신혼집을 마련해서 정착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보통의 부부들과 달리 난 국적이 다른 남편을 만난 탓에 아직까지는 언제, 어디에 우리가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 1년은 부모님 집에서 같이 지냈고, 우리 부부가 따로 집을 얻어 분가하는 게 경제적으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일을 하니 어차피 낮에는 빈집이 되고, 집안일을 4명이 분담하니 더 효율적이며, 이사를 가게 되면 가구니 전자제품이니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사야 하니 말이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면 잔소리도 듣게 되고 한국 문화를 모르는 데이빗과 브라질 문화를 모르시는 부모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모아둔 돈이 많았다면 고민 없이 바로 새집을 얻었을 테지만 말이다.


결국 지난달, 부모님 집 앞 5분 거리로 분가를 했다. 요새는 흔한 일이라고는 해도 대출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데이빗에게 2프로대의 이율은 거의 거저라고 느껴진 모양이다.  

결혼한 사람은 집을 원한다.
(Quem casa quer casa.)


우리에게 사생활이 필요하다던 데이빗은 전세계약을 한 날부터 이미 필요한 물건과 인터넷에서 중고가구를 사서 방에 쟁여놓았고, 지금도 신나게 집을 꾸미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또 몇 년 안에 (데이빗은 은퇴 후라고 말하지만) 브라질로 이주할 건데 이렇게 이것저것 사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 데이빗이 뭔가를 사고 싶다고 할 때마다 티격태격하게 된다. 


엄마가 해주시던 밥과 반찬도 이제 내가 해야 하고, 청소며 빨래 등 집안일도 나눠서 할 사람이 줄었으니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늘었다. 4명이서 시끌시끌 북적북적하던 집도 이제 2명이 조용하게 사는 집이 되었고, 데이빗이 한국말을 듣고 말하는 시간도 줄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부모님 품을 떠나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데이빗이 집 생겼다고 이렇게 행복해하니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왜 이렇게 빨라지기만 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