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6

비행기 길막 3대장, 그 중 가장 순한맛은?!

[대설주의보가 내렸던 인천공항의 현장]

‘..아직도 아직인가.’

오늘은 첫째랑 둘이 눈의 도시, 삿포로에 가기로 한 날. 신나서 아침 비행기를 탔고, 문이 닫힌 기억이 마지막이다. 깜빡 졸았다 창밖을 보니 3시간 전 비행기 탄 그대로의 풍경에 멈춰있다.

‘언제 뜨나’

운명의 장난인 듯, 눈을 보려고 겨울왕국 삿포로로 떠나던 그날은 하필 대한민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눈.

바람, 안개와 더불어 눈은 비행기 정상운항을 방해하는 3대장 중 하나다. 그래도 아예 비행기가 못뜨는 안개(저시정)나 바람(태풍)이 불닭볶음면이라면, 눈은 신라면 정도 되시겠다.

비행기의 눈/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을 De-icing (제방빙)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제빙(얼음 제거)과 방빙(얼음 방지)작업이 있다. 제방빙은 게이트에서 하는게 아니라, 공항의 정해진 제방빙 패드(구역)로 이동하여 실시하는데, 그 이유는 기다란 사다리 같은 기기로 비행기 온몸에 제방빙 용액을 사정없이 투하기 때문이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 게이트에서 그 독한 용액을 흩뿌릴 수는 없다. 삿포로나 캐나다 지역 공항처럼,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공항들은 열선이라던지, 제방빙 시설물이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던데 인천공항은, (판사님,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이간, 눈이 온 인천공항은 그야말로 비행기들의 아비규환이다. 하늘에서 보면 제방빙 패드로 진입하기 위해 줄줄이 대기타는 비행기 행렬이 장관일 것이다. 난 이 상황들이 마치 한두개의 개뼉다구를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개들의 치열한 눈치싸움 같다고 느껴졌다.

“아! 쫌! 나 진짜 오래기다렸다고!”

“내가 먼저좀 가자, 나 갈길이 멀다!“

“다들 조용히 해라..내 안에 지금 500명 있다..”

수많은 비행기(항공사)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어필하며, 자신이 먼저 제방빙 패드장에 진입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 공항의 대빵, 관제탑은 대답한다. “다들 조용히 해라. 결정은 내가 한다”


도어클로즈 순서가 관제탑에 전달되면, 관제탑은 각 비행기들의 게이트, 제방빙 패드 상황, 비행기들이 날아갈 경로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비행기들에게 이동을 지시한다. “1번 비행기, 1번 패드장으로” “2번, 넌 1번 다음이야” “3번 넌 좀 기다려” 단연, 공항의 독재자다.
 

이날 어떤 비행기는 타이밍 좋게 1시간만에 탈출한 반면, 내 비행기는 아쉽게도 운이 따르지 못했다. 무려 3시간 지난 뒤에야 겨우 제방빙 패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영겁의 시간을 밀폐된 공간에서 보내는 와중에도 두어가지 깨달음을 얻었데, 첫번째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민성이다.

의외로 4시간 동안 “문의”는 있을지언정 “불만“은 없었다. 아무리 기상문제라 하더라도, 4시간 동안 정확한 안내없이(관제탑이 정보를 안 주면 항공사도 언제뜰지 모름) 기내에 있으면 폭발하기 마련인데, 최소한 내 주변 손님들은 평온했다. ”별 경험을 다 해본다“라며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승객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일부손님을 대한민국의 국민성으로 치환하는 것은 비약일지 모르나, 십여년 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둘째로는 (별표 다섯개) 비행기에 탈 때 간단한 주전부리는 갖고 타자..(제발..)


특히 눈이 많이 온 날은 제방빙 후 이륙까지 얼마나 기내에 갇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내가 탄 비행기는 탑승 3시간 만에 기내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관제탑에서 '조금 더 기다려, 어허 기다려, 쓰읍 재촉할래? 팍 씨' 하니, 언제 비행기가 움직여야 할 지 몰라 음식물 배포 결정이 늦어진 듯 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 윤곽이 나온 시점에기내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도 할말이 많은데..삿포로 편을 기대해주길)


결론적으로 9시 비행기가 오후 1시에 떴으니, 이동까지 장장 7시간여를 기내에 갇혀 있던 셈이다.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삿포로 편에서 풀겠다)


창밖으로, 허공에 흩뿌려지는 수백만원어치의 제방빙 용액연기를 멍하니 보노라어느새 대기의 지루함은 잊혀지고 새삼 감동스럽다. 머 하긴, 언제 또 내가 탄 비행기가 제방빙을  하겠는가?그렇게 좋은 기억만 취하기로 하고, 이내 곯아떨어진 나는 마침내 7시간만에 일본, 삿포로에 도착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 -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