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살리는 이름

나를 다시 부르며 살아가기까지

by 결화



태어나서 한 번도 내 이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름에 어떤 뜻이 있는지, 누가 지어준 것인지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부모님께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제야 들은 대답은 이랬다.


“할아버지께서 받아오신 여자아이 이름 중 제일 무난한 걸로 골랐어.”

그때 정해진 내 이름은 ‘혜정’.
뜻은? 없었다고 한다.

나는 30년을 그 이름으로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학창 시절은 학교폭력과 따돌림으로 얼룩졌고,
내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 주던 선생님들은 어느 순간 모두 나를 떠났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불안해지고 무의미해졌다.


잔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삶.
그게 나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했다.

누구의 이름도 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친구, 학생, 가족… 그 모든 호칭이 지겨웠다.


“부디, 저를 부르지 말아 주세요.
부디, 저를 잊어주세요.”


나는 그렇게 6년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갔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해방감’ 속에 진짜 내 마음이 숨어 있었다는 걸.


“밖으로 나가고 싶어.”

“나도 사람처럼 살고 싶어.”


그때 문득 떠올랐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


엄마가 예전에 무심코 한 말이 생각났다.

"네가 그렇게 죽을 듯이 사는 게… 혹시 그 이름 때문 아니냐고."

처음엔 웃어넘겼던 말이, 지금 내 심장을 콕 찔렀다.

나는 개명을 결심했다.
그리고 직접 이름을 짓기로 했다.

작명소, 철학관, 작명 어플…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수십 개의 이름을 받아봤지만 어느 것도 나 같지 않았다.

예쁘지만 흔했고, 새롭지만 낯설었다.
나이는 30살인데, 받아본 이름들은 전부 신생아 명단에서 막 튀어나온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왜 개명을 하려 했을까?'


남들이 정한 이름을 따르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을 “내 손으로 다시 짓고 싶었던 것”이었다.

밤마다 한자를 조합했고 어떤 이름이 좋을지 고민했다.
뜻을 붙이고, 소리를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나는 끝내 나를 살리는 이름을 지었다.


‘세인’


세상을 이으며,
사람을 이으며,
내 안의 생명을 부르는 이름.


필요한 서류를 전부 챙겨 직접 법원에 갔다.
그리고 개명 신청서에 이렇게 적었다.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살고 싶어요, 판사님.”


2022년의 따뜻한 봄,
나는 정식으로 세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인으로 살아온 지금, 물론 힘든 날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럽진 않았다.

괴로워도 이름 덕분인지 다시 일어날 힘이 생겼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책임지는 삶.
내가 나를 꾸미는 하루.
그게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그토록 낯설고 감격스러웠다.


이름이 바뀌고 나서 내 삶도 바뀌었다.

사람들이 ‘세인’이라는 나를 기억해 주고,
나도 스스로를 ‘세인’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함께 부른다.


이제야, 나는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아니, 내 이름이 너무 고맙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내가
드디어, 이름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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