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 봐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재료 손질해서 반찬 만들기를 무한반복하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합니다. 웬만한 재료는 미리 다 손질해 칼질까지 마친 후 냉동실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바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 방법을 소개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요리에서 재료 손질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아이와 놀이터에 있다가 피곤한 몸으로 돌아온 후, 볶음밥 하려고 양파 껍질부터 벗겨야 하는 것이 귀찮았던 저는 ‘옳거니! 바로 이거구나’ 했어요. 시간 많을 때 재료 손질 해놓고 바쁜 요리시간에는 꺼내서 넣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효율적일 순 없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볶음밥용과 된장찌개 채소부터 시작해 온갖 재료를 대량구매해 씻고, 다듬고, 썰고,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저장하기를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냉동보관되는 채소와 식재료가 많더라고요. 생각지 못했던 두부, 그리고 과일까지도요. 점점 냉동실엔 재료들이 쌓여가고, 냉동실에 넣을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습니다.
어느 날 문득, 냉장고와 신선한 채소가 있는데 굳이 냉동실에 얼렸다 나온 채소를 쓰는 저를 발견합니다. 냉동실 문 열 일이 많아져서인지 채소 상태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요리를 위해 냉동실에 얼린 채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냉동 채소를 소진하기 위해 요리를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힘들게 쌓아놓은 채소들을 차츰 정리하게 되었어요.
냉동실에 재료를 얼렸다 먹는 것을 멈추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냉장고의 고장이었습니다. 갑자기 고장 나 바닥에 물이 줄줄 흐르는 냉장고의 냉동실 칸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냉동제품은 바로 아이스박스에 넣어 살릴 수 있었지만, 냉동한 채소들은 곤죽이 되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쓰레기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입맛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저희 집 냉동실은 많이 비어있어요. 문쪽 칸도 텅텅 비어있고요. 파와 마늘은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다 먹지 못해 냉동하지만 냉동한 파, 마늘은 다 먹을 때까지 새로 사지 않아요. 떨어지기 전에 채워 넣기를 하지 않고 떨어지면 그때 사요. 이삼일 없어도 괜찮더라고요. 육류도 생고기를 조금 사서 바로 먹고, 뭐든지 조금 사서 바로 먹으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냉동실에 넣었다면 냉동한 것 먼저 다 먹은 후 새로 사구요.
사실 식구가 적고, 바로 앞에 마트가 있어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더 이상 식재료를 썰어 냉동실에 집어넣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