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이제 어른 밥 먹을 때가 옵니다. 맛있는 요리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저는 또 각종 블로그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양념부터 눈길이 갔습니다.
감칠맛 내려면 참치액, 굴소스는 무조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없으면 맛없어서 못 먹을 것 같았습니다. 소금만 해도 가는소금, 굵은소금, 고기 구워 먹을 때 먹을 허브솔트, 선물 받은 핑크 솔트, 구운 소금까지 5가지가 되었습니다. 잡내 없애려면 맛술 없으면 큰일 나고요, 후추는 보통 쓰는 가루후추가 있지만 왠지 멋있어 보이는 그라인더 달린 통후추와 그냥 통후추를 삽니다. 고기 요리할 때 없으면 냄새나서 못 먹을까 봐 월계수잎도 구비해 놓습니다. 단맛 내는 것에는 설탕과 올리고당, 그리고 물엿, 메이플시럽도 사게 됩니다. 다행히 간장은 국간장, 양조간장, 쯔유에서 멈추었어요. 양가에서 준 된장, 고추장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 저는 일본 미소 된장과 마파두부를 해 먹겠다고 중국 장류인 두반장까지 들여놓게 됩니다. 쌈장도 당연히 샀고요. 식초와 더불어 레몬즙과 매실액을 항시 대기 시켜놓습니다.
육수 또한 중요하지요. 다시마, 국물용 멸치, 디포리, 북어포, 가쓰오부시까지 들여놓습니다. 파슬리가루는 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음식을 예쁘게 보이고 싶었나 봐요.
결국 한 두 번 사용하고 안 쓰게 돼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게 되는 양념류들이 생겨났습니다. 다음엔 사지 말아야지 하다가 새로운 요리를 하게 될 때 이거 없으면 맛없을 거 같아서 또 삽니다. 그러다 한식조리사 과정을 듣게 되며 엄청난 변화를 맞이합니다.
짠맛은 소금과 간장, 단맛은 설탕, 신맛은 식초, 장류는 고추장, 된장.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식조리사에서 스무 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기본양념으로만 만들어집니다. 맛술, 참치액, 굴소스 제공 안되고요, 국간장도 제공 안됩니다. 양조간장도 거의 필요하지 않아요. 육수에 색깔 내는 데 쓰입니다. 육수는 어떻고요. 마늘 몇 쪽, 소고기 아주 조금 들어가요. 그래서 맛이 나겠냐고요?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랍니다.
간이 잘 맞으면 웬만한 맛은 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두 번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소스 한 병을 사지 않아요. 이제 새로운 요리보다는 늘 먹던 음식만 하게 되더라고요. 소금 굵은 거 하나, 가는 거 하나. 고추장, 된장. 양조간장, 국간장, 설탕, 식초, 고춧가루, 참기름 이걸로 음식 다해요.
이쯤에서 궁금하실 수 있는 TMI. 저는 한식조리사에 합격했을까요? 한식조리사에 합격하고 여세를 몰아 독학으로 양식조리사와 중식조리사까지 도전하여 양식조리사에 합격했어요. 중식조리사는 한 번 떨어진 후 코로나로 다시 도전하지 못했어요. 제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한식이든, 양식이든, 중식이든 모두 기본양념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