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 아침까지 엄마 밥 먹으며 살림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출퇴근하며 집은 그냥 잠자는 공간 정도였지요.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1년, 살림 돌볼 겨를 없이 아기 키우느라 정신없는 1년을 보낸 후, 복직을 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꽤 자연스럽게 퇴직을 하고, 아기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될 즈음, 살림이란 것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각종 정리 용품이었습니다. 프로 살림꾼들의 블로그를 보며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크고 작은 정리함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투명한 정리바구니, 하얀색 정리함, 손잡이 있는 정리함, 뚜껑 있는 정리함. 낮은 것, 높은 것, 긴 것, 짧은 것. 급기야 햄버거에 딸려 오는 케첩을 담기 위한 아주 작은 바구니까지 사게 됩니다. 잡다한 살림들을 하얀 바구니에 넣으니 어찌나 깔끔해 보이던지요. 주방 상부장, 서랍을 열면 각 맞춘 정리함들이 나의 살림 수준을 확 끌어올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정리용품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시간이 지나니 양념 담은 바구니에 기름이 끼고 간장 국물이 튀기 시작했습니다. 상부장안에 있어서 먼지라고는 안 탈 줄 알았던 플라스틱 바구니들에도 때가 끼더군요. 냉장고 안은 어떻고요. 야채칸에 야채 넣은 바구니에는 양파껍질 부스러기, 흙부스러기가 바구니 바닥을 뒤덮었습니다. 깔끔해지려고 샀던 정리용품들이 담긴 물건들보다 더러워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물티슈로 대충 닦아보려 했지만 묵은 기름때들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큰 맘먹고 베이킹소다를 풀어 대대적인 정리바구니 닦기를 하였습니다. 닦는 것에 소질이 없는 저는 너무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었고, 노력에 비해 플라스틱에 묻은 때는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바구니 안에 자리 잡은 버려야 할 물건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정리 바구니를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담을 바구니를 사기 전에 담아야 할 물건부터 없애고, 바구니도 한 두 개씩 줄여갔습니다. 바구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리를 위해 돈 쓰고, 힘쓰고, 정리는 안되고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지금은 정리바구니를 절대 사지 않습니다. 요즘은 일회용 포장 용기가 너무 훌륭합니다. 종종 나오는 지나치게 튼튼한 영양제 박스, 야채 담겨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잘라서 쓰고, 페트병도 잘라서 씁니다. 큰 것이 필요하면 튼튼한 쇼핑백 잘라서 쓰고요.
그리고 애당초 담을 물건을 많이 만들지 않기로 합니다. 이제 햄버거 케첩 모으지 않아요. 바로 사용하고 버려요. 이왕 주방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 편에서는 요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