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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Aug 08. 2023

미니멀한 살림 이야기 5- 주방 가전에 대하여

 초등학교 들어간 저희 아이가 시력이 나빠졌어요. 아이의 눈건강에 신경 쓰지 못했던 저를 탓하던 중, 친정 엄마가 착즙기 사서 당근을 갈아주라고 합니다. 그럼 눈이 맑아진대요.


 홈쇼핑에서 시연하는 것을 재미있게 봐 왔던 저는 바로 거액을 들여 착즙기를 삽니다. 아이의 눈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당근 한 박스를 주문합니다. 착즙기와 당근 한 박스가 저희 집으로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착즙기 늪에 빠지게 됩니다.

    

 착즙기의 설거지거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쓸 때마다 큰 소쿠리로 한 가득이에요. 씻고 말리는데 아주 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당근 찌꺼기로 인한 음식쓰레기 양도 어마어마해요. 처음엔 아까워 어떻게든 요리에 활용해 보려고 했지만 한 두 번 정도 해보고 안 하게 되었어요.      


 당근과 함께, 위장 안 좋은 신랑을 위해 양배추를 짜내고, 사과를 짜내고, 짜낼 수 있는 건 모두 짜냅니다. 큰 거 하나 착즙 해도 마실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아요. 온갖 채소, 과일 껍질과, 찌꺼기 더미에 음식물쓰레기가 가득해집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지도 못해요. 신선함이 생명이니까요.      


 부지런하지 못한 저는 지쳐 갑니다. 점점 착즙기 사용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은 상부장 속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 후 헐값으로 처분을 하게 되지요.   

   



 저희 집을 거쳐간 물건 중 커피머신이 있습니다. 신랑이 주말이면 많게는 하루에 세 번씩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오더라고요.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 캡슐커피 내려주는 것이 멋있어 보였던 저는 이 집 저 집 다 있다는 캡슐커피머신을 삽니다. 신랑이 카페에서 사 오는 커피값도 아끼고,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이웃 엄마들에게 멋지게 캡슐 커피 내려줄 생각에 신이 납니다.      


그런데 신랑이 집에 커피머신 두고, 계속밖에서 커피를 사 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 사면서 바람 쐬고 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지요. 손님 올 때 몇 번 쓰다가 코로나로 집에 손님 올 일이 없어집니다. 저라도 먹으면 되는데 저는 우유에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타서 먹거든요. 이 물건도 하부장에 들어가 있다가 언니 집으로 보내게 됩니다.

     



 제가 꿋꿋이 안 들여놓는 가전제품은 김치냉장고예요. 양가에서 왜 김치냉장고 안 사는지 이해 못 하세요. 김치냉장고에 김치 넣으면 너무 맛있는데 왜 맛있는 김치 맛없게 먹냐고요. 김치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 보관하면 오래가고 좋은데 왜 안 사냐고 ‘내가 사주랴?’ 하십니다. 그래도 저는 꿋꿋이 안 들이고 있어요. 집에서 김장 안 하고 양가에서 가져와 먹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지금 냉장고에  김치 큰 것 한 통 넣고도 자리가 남아요. 야채랑 과일 조금 사서 먹으니 오래 보관 안 해도 되고요, 반찬도 딱 먹을 것만 있거든요. 무엇보다 김치냉장고가 차지할 공간이 아까워요.  


다음 이야기는 미니멀한 살림이야기의 마지막 편 물건 버리기입니다. 다음 편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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