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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한 살림 이야기 5- 주방 가전에 대하여

by 제니

초등학교 들어간 저희 아이가 시력이 나빠졌어요. 아이의 눈건강에 신경 쓰지 못했던 저를 탓하던 중, 친정 엄마가 착즙기 사서 당근을 갈아주라고 합니다. 그럼 눈이 맑아진대요.


홈쇼핑에서 시연하는 것을 재미있게 봐 왔던 저는 바로 거액을 들여 착즙기를 삽니다. 아이의 눈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당근 한 박스를 주문합니다. 착즙기와 당근 한 박스가 저희 집으로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착즙기 늪에 빠지게 됩니다.

착즙기의 설거지거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쓸 때마다 큰 소쿠리로 한 가득이에요. 씻고 말리는데 아주 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당근 찌꺼기로 인한 음식쓰레기 양도 어마어마해요. 처음엔 아까워 어떻게든 요리에 활용해 보려고 했지만 한 두 번 정도 해보고 안 하게 되었어요.


당근과 함께, 위장 안 좋은 신랑을 위해 양배추를 짜내고, 사과를 짜내고, 짜낼 수 있는 건 모두 짜냅니다. 큰 거 하나 착즙 해도 마실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아요. 온갖 채소, 과일 껍질과, 찌꺼기 더미에 음식물쓰레기가 가득해집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지도 못해요. 신선함이 생명이니까요.


부지런하지 못한 저는 지쳐 갑니다. 점점 착즙기 사용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은 상부장 속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 후 헐값으로 처분을 하게 되지요.



저희 집을 거쳐간 물건 중 커피머신이 있습니다. 신랑이 주말이면 많게는 하루에 세 번씩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오더라고요.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 캡슐커피 내려주는 것이 멋있어 보였던 저는 이 집 저 집 다 있다는 캡슐커피머신을 삽니다. 신랑이 카페에서 사 오는 커피값도 아끼고,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이웃 엄마들에게 멋지게 캡슐 커피 내려줄 생각에 신이 납니다.


그런데 신랑이 집에 커피머신 두고, 계속밖에서 커피를 사 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 사면서 바람 쐬고 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지요. 손님 올 때 몇 번 쓰다가 코로나로 집에 손님 올 일이 없어집니다. 저라도 먹으면 되는데 저는 우유에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타서 먹거든요. 이 물건도 하부장에 들어가 있다가 언니 집으로 보내게 됩니다.



제가 꿋꿋이 안 들여놓는 가전제품은 김치냉장고예요. 양가에서 왜 김치냉장고 안 사는지 이해 못 하세요. 김치냉장고에 김치 넣으면 너무 맛있는데 왜 맛있는 김치 맛없게 먹냐고요. 김치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 보관하면 오래가고 좋은데 왜 안 사냐고 ‘내가 사주랴?’ 하십니다. 그래도 저는 꿋꿋이 안 들이고 있어요. 집에서 김장 안 하고 양가에서 가져와 먹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지금 냉장고에 김치 큰 것 한 통 넣고도 자리가 남아요. 야채랑 과일 조금 사서 먹으니 오래 보관 안 해도 되고요, 반찬도 딱 먹을 것만 있거든요. 무엇보다 김치냉장고가 차지할 공간이 아까워요.


다음 이야기는 미니멀한 살림이야기의 마지막 편 물건 버리기입니다. 다음 편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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