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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23. 2024

강철 같은 의지 대신 강철 같은 의지를 만드는 환경을

<꾸준함의 천재가 되는 법> 18화

회사 연수원에서 2박 3일 동안 먹고 자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내리 달려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출장을 가기 전 ‘평소처럼 영어공부와 운동 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약간의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꾸준함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떻게 만든 꾸준함인데, 환경이 바꾸었다고 단번에 사라질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3일 동안 영어와 운동 모두 손도 대지 못했다. 바쁘긴 했지만 아예 시간이 없지는 않았다. 업무가 끝난 후 잠들기 전까지 2~3시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영어 공부나 운동 습관이 없었던 것처럼, 그동안 만들었던 습관이 기적처럼 사라졌다. 꾸준하게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평소의 일상과 출장 상황은 무엇이 달랐던 걸까? 2박 3일간의 일상을 복기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짚어 보자.


1. 사라져 버린 신호


나는 일하는 시간과 꾸준함을 위한 시간의 변화가 확실하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업무에 집중한다. 주어진 업무를 시간 안에 확실히 마무리하고 퇴근한다. 퇴근길부터는 꾸준함의 시간이다. 걸어가면서 영어 방송을 다시 듣거나 '오늘은 어떤 운동을 해야지' 생각하며 걸어간다. 최대한 빨리 헬스장에 들어가서 운동할 생각에 발걸음부터 빨라진다. '퇴근'은 집중력의 초점을 일에서 운동과 영어 공부로 다시 맞추는 계기이다.


2박 3일간의 출장에서는 퇴근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다. 첫날 저녁에는 출장에 참여한 인원들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당연히 약간의 알코올 섭취도 있었다. 취하지 않을 정도만 천천히 마셨기에 크게 무리가 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일찍 자리를 파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 건물에 있어서일까. 딱히 퇴근한 느낌은 아니었다. '퇴근'이라는 계기가 없어서 인지 일하는 시간과 꾸준함을 위한 시간의 변화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상태로 숙소에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퇴근’이라는 행동은 자체로 신호였다. 업무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내가 만들어 놓은 꾸준함의 세계로 입장해야 한다는 지하철 안내방송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출장지에서는 그런 신호를 들을 수 없었다. 당연히 꾸준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도 찾을 수 없었다.  


2. 높아져버린 마찰력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헬스장이 있다. 거리라는 마찰력을 줄여서 쉽게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 일부러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했다. 실제로 예전에 다니던 좀 더 거리가 멀었던 헬스장에 비해 더 자주 운동을 간다. 확실히 거리라는 마찰력을 줄이자 꾸준함 형성에 도움이 됐다.


출장을 온 회사 연수원에도 헬스장이 있다. 하지만 헬스장 위치가 숙소 건물과 다소 떨어져 있다. 워낙 오래전에 이용해 봤던 터라 정확한 위치도 잘 기억나질 않았다. 숙소에서 헬스장까지 가는 방법, 헬스장 이용 방법(그냥 이용하면 되지는 어딘가에 말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등) 등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단번에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평소처럼 헬스장에서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하는 건 포기했다.  


출장지에서 헬스장 가기를 포기했던 건 마찰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헬스장을 이용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평소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이렇게 고려할 것들이 많아지면 무의식이 아닌 의식의 영역에서 생각하게 되고, 평소의 자동조종 모드가 풀리게 된다. 이것저것 따지다가 ‘에이 이럴 바에는 그냥 쉬자’가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숙소 근처에 운동장이 있었다. 헬스장 대신 매일 저녁 식사 후 운동장을 빠르게 여러 바퀴 걸었다. 헬스장으로 가는 마찰력은 높았지만 운동장으로 향하는 마찰력은 낮았기 때문에 그나마 가벼운 산책이라도 할 수 있었다.


3. 깨져버린 의도적 불편함 설계


보통은 퇴근하면 스마트폰을 몸에서 떼어 놓는다. 일부러 눈에 보이지 않게 안방에 놓고 거실에서 생활한다. 가급적 운동을 끝내고 밥을 먹을 때만 잠깐 유튜브를 본다. 만약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해야 하면 핸드폰을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 눈에 띄면 스마트폰을 만지고 싶고, 스마트폰을 한번 만지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불편함을 설계해서 너무나 연약한 의지력을 보호하려는 나만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서는 정 반대였다. 숙소에 들어온 다음 스마트폰을 잡고 유튜브부터 보았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침대에 누워 무심코 유튜브를 켠 것이 화근이었다. 집과는 달리 회사 연수원은 원룸 구조이다 보니 스마트폰을 눈에 보이지 않게 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평소에 설계해 놓았던 의도적인 불편함이 깨져버렸다.   


잠깐만 유튜브를 본다는 것이 어느새 30분이 되었고, 곧 1시간이 되었다. 평소에 좀처럼 보지 않던 축구 하이라이트, 게임 영상까지 모두 보았다. 결국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속을 헤매었다. 평소보다 머릿속이 흐리멍덩한 건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덕분에 수면시간까지 평소보다 늦어졌다. 연쇄작용으로 아침에 하던 영어공부까지 못하게 됐다.




“강철 같은 의지는 없다. 강철 같은 의지가 작동할 수 있는 환경만 있을 뿐”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이다. 운동과 영어 공부에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을 벗어나자마자 모든 루틴이 망가졌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평소처럼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했다. 의지는 환경을 앞서지 못한다. 오타니 정도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면 모를까. 나같이 평범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은 불가능하다.


만약 꾸준한 실행이 어렵다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의지를 방해하는 환경을 탓해야 한다. 그리고 작은 의지만으로도 실행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곳곳에 설계해야 한다. 평소의 환경을 벗어나 보니 나만의 습관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꾸준함을 만들 때 그런 환경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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