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천재가 되는 법> 20화
회사를 다니며 처음 해외법인과 화상 회의가 잡혔다. 현지 직원들도 참석하는 회의여서 진행은 100% 영어로 진행됐다. '그동안 영어공부를 했으니 하고 싶은 말은 막힘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다.
"I think... um... so.... um..."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는 회의 시작 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첫 영어 회의에 바짝 긴장한 터라 평소에 익숙하던 표현들도 생각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무수히 많은 '엄'과 '쏘'를 끼워 넣으며 겨우 영어 문장을 입 밖으로 뱉었다. 그야말로 진땀 나는 회의였다.
회의가 끝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영어 버퍼링이 걸려 버벅거리는 모습이었다. 이럴 거면 그동안 영어 공부를 왜 했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바라는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말하는 모습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투입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충만했던 영어 공부 의욕이 확 꺾였다.
자칫하다가 정체기가 올 판이었다. 이렇게 꾸준히 하던 영어공부를 손 놓을 수는 없었다. 마음부터 고쳐먹었다. 회의 이후 한동안은 내가 실패한 장면에 집중했다. 회의 시간에 버벅거리던 모습, 영어 문장 하나를 입 밖으로 뱉는데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 하지만 회의 시간에는 내가 성공한 일도 있었다. 비록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현지 직원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100%는 아니지만 80% 이상 현지 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성공한 장면도 분명히 있었다.
스스로를 달랬다. 만약에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더듬거리며 소통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라고. 이 정도로 영어로 말한 것도 잘했다고. 원래 성장은 비탈길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이뤄진다고.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달라져 있을 거라고. 여러 번 속으로 달랜 효과가 있었는지 다시 원래 습관대로 영어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정체기가 찾아올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것에 비례해서 결실이 바로 나오면 좋을 텐데. 슬프게도 눈에 띄는 결실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영어 공부를 해도 외국인처럼 유창해지지 않고, 운동을 해도 근육이 확확 붙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와 결과가 어긋나는 상황을 몇 번 맞닥트리면 의욕이 떨어진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더듬거리는 모습이 답답했던 나처럼 말이다.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해지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굳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엄격한 사감 선생님이 될 필요는 없다. 평소에 꾸준하게 잘해왔다면 때로는 관대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구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했던 정김경숙은 유명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와 많은 직장인들이 번아웃을 겪는다며, 이때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잘해줘라(Be nice, be kind)”라고 말한다.¹ 나는 이 말이 꾸준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해낸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이 커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질책하려는 마음이 먼저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유퀴즈에서 나왔던 한 문장을 속으로 되뇌이려 한다.
Be nice, be kind.
나는 그 문장을 떠올리면 마법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참고자료
1. 정김경숙. (2022.11.23). <유 퀴즈 온더 블록 169화_ 신입사원편>,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