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챕터의 시작
오늘은 아이 탄생 이후 근 한 달(정확히는 29일)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낄 만큼 바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 달은 과거의 정신없던 때와는 또 달랐다. 삶의 풍경이 한 달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그 새로운 풍경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내의 출산을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아이를 만났고, 조리원 기간을 거쳐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새벽에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는 일은 새로운 일상이 됐다.
한 달 만에 이렇게 삶이 큰 폭으로 달라진 적이 과거에 있었을까? 지금까지 거쳐왔던 삶의 큰 관문들-이를테면 대입, 취업, 결혼-도 한 단계를 통과한 직후 이렇게 변화 폭이 크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과거에 관문을 통과한 직후에는 주로 낮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바뀌었다. 대학교를 가고는 수업을 들어야 했고, 취업 이후에는 업무를 해야 했다. 결혼 이후에는 아내와 주로 좋아하는 곳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기 탄생 이후로는 낮 시간은 기본이고, 잠을 자는 시간까지 바뀌었다. 3시간 단위로 쪽잠(!)을 자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최근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선택 중에는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취업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직을 하면 되고, (그럴 일은 없지만) 결혼도 서로 이별하는 것이 가능한 제도다. 하지만 아이의 탄생은 불가역적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엄마 뱃속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 새로운 생명은 내 삶의 한 부분에 꽉 하고 박혀서 영영 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영화 <어바웃 타임>이 자주 생각났다. 영화의 주인공인 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팀은 아기가 태어난 후 과거로 돌아가기를 멈춘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과거로 돌아가면 아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면이 아이가 태어나면 삶을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에 대한 영화적 비유라고 느꼈다. 만약 내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한다면 한 번 넘어간 페이지 중 다시는 앞으로 돌아갈 수 없는 특별한 페이지가 생긴 셈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삶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최근에 아내에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것 같아'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