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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02. 2024

열어도 괜찮아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정지혜, 유유 출판사 2018)'를 읽고

 "서점을 열고 싶다는 마음은 왜 이유가 안 되죠?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의미? 깊이? 그런 건 다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변명처럼 하는 얘기예요. 생각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저만 해도 책거리를 열고 나서 배운 게 얼마나 많다고요. 나는 지혜 씨가 하루라도 빨리 서점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51p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난감한 지점이 있다. 좋은 글쓰기는 계획적 글쓰기냐 우발적 글쓰기냐 하는 물음과 마주할 때다. 학생들은 내게 질문한다.

 "선생님,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우선 개요를 생각해 봐."

 그러곤 나는 칠판에 글자를 휘갈긴다. '쌀'에 대해 쓰고 싶다고 문득 떠올랐다면, 1 문단엔 '벼'에 대해 설명하고, 2 문단엔 '쌀의 종류'에 대해, 3 문단엔 '쌀과 인류의 관계' 등등을 개괄적으로 써보라고.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질문한다.

 "개요 없이는 쓸 수 없나요?"

 고민에 빠진다. 실제로 나도 개요를 작성하고 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상을 탔던 글들은 개요를 철저하게 썼다. 1 문단은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을 담고, 2 문단은 내 주장을 쓰고, 3 문단은 보충하는 근거 등등을 순서대로, 짜임새 있게 얼개를 만들어 나갔다. 상장을 위한 글쓰기는 얼개가 있다.

 그렇다면 평상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글쓰기는? 학생의 물음이 옳았다. 삶을 위한 글쓰기는 개요로 시작하기엔 무겁다. 계획적으로 쓰는 것도 필요하겠다만, '쓰다 보니' 발견되는 것들이 많다.

 계획과 실행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삶을 위한 글쓰기인 것이다.

 서점을 여는 것도 비슷하다. 거창한 계획만으로는 안 된다. 실행이 필요하다. 나는 독립 서점에 관한 책을 10권 정도 샀다. 일본 서점, 한국 서점, 미국 서점. 독립 서점이 어떻게 운영되고, 어떻게 사라지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했다. 실행하고자 첫 번째로 만난 책은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정지혜, 유유 출판사 2018)'이다.

 좋은 책을 잘 만났다. 우선 해보라는 용기를 준 책이다. 수두룩 빽빽하게 머릿속을 메우던 아이디어들이 조금씩 정돈되어 갔다.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들, 이를테면 책을 팔아야 할까, 책은 어떻게 팔아야 할까, 콘셉트는 어떻게 갖추어야 할까 등등. 이들 고민은 책방 선배의 발자국 앞에서 하나둘 질서를 찾아갔다.

 마음먹기. 우선 마음을 먹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지혜야, 독서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야."

-106p


  마음을 먹고 나서 고민할 것은 지속성이다. 어떤 책을 추천하느냐의 문제는 책방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다.

 한 학생이 내게 질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 선생님에게 인생책은 어떤 것이 있나요?"

 나는 머뭇거렸다. 인생책. 내게 인생책이라는 것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 또렷한 눈동자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선생님으로서 지적인 책을 읽었다고 해야 될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내가 진짜 재밌게 읽은 책을 이야기하자니 수준이 낮아 보이고.

 "아. 수준이 낮을 수도 있는데, 나는 아무개 작가의 책을 읽었어."

 최악의 답이었다. 책에 무슨 수준이 있겠는가. 선생님으로서의 자아가 독서에 대한 진솔함마저 관여하고 있다니.

 좋은 책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 질문은 책방을 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질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맡기는 것은 타율적인 삶이다.

 "책을 읽는다고 유능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모두 자기만큼의 사람이 될 뿐이다.(이현주, 읽는 삶, 만드는 삶)"

 나는 훌륭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격언으로 늘 나 자신을 옭아매려 들었으니, 책을 소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책을 추천할 때는 사회적 자아 이전에, 개인적 자아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수준이 없다. 책 추천에는 진솔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추천해 주되, 선택은 타인의 몫이다. 타인의 선택마저 나는 가로채려고 했으니, 진솔한 책 추천이 되었겠는가? 진실해도 된다. 지속성은 진솔함에서 나온다.



"책이 좋아서 서점을 열었는데, 고단한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책을 통해 내가 만난 사람이었다. 나보다 더 사적인서점을 아껴 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95p


 애인과 함께 전주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잘 익은 언어들'이었다.

 "아까 전화하셨죠?"

 나는 음식점을 갈 때도 미리 전화를 해보는 버릇이 있다. 지도앱에는 영업 중으로 표시되어 있더라도, 실제 가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책방은 특히 확인한다. 그렇게 빠르게 기술이 발달했다는데, 책방의 흥망에는 어찌나 더딘지.

 다행이었다. '잘 익은 언어들'은 열려 있었다. 주차를 어디에 하면 좋은 지도 친절하게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잘 익은 언어'는 깊은 언어였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은 끙끙거림 끝에 익었을 때, 와닿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의 눈매에서는 진심이 그렁그렁했다.

 우리는 서로 3권씩 정도 집어 들었다. 할인이 되지 않더래도 사고 싶었다. 애인은 내게 '책방뎐'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사장님의 책이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희로애락을 기록한 책이랬다. 애인은 너스레를 떨며 사인도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소중한 연락처와 대전의 책방 이름 몇 곳을 소개받았다.

 '책방 열게 되면 연락 주세요.'

 사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작은 책방은 자본의 논리에 묻혀 쉽게 사라진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는 넓은 유통망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들의 영향도 크다. 자본의 논리에서 버텨내는 것이 책방을 운영하는 또 하나의 과제다.

 그래서 연결성이 필요하다. 책방지기들과의 연결을 통해 자본의 논리와 싸우는 우군을 만드는 것. 그리고 지지해 줄 응원 세력들을 구축하는 것.

 이는 책방을 열고서 진정성과 지속성을 통해 갖추어지는 것이겠다. 이상 삼요소는 계획과 실천의 대화이니, 일단 해보자.


소심한 책방의 특징


1) 예약제로 받는다

2) 5만원 이상은 무료 배송

3) 북커버를 디자인하여 특별함을 더한다

4) 상담 2시간, 책 고르는 시간 2시간, 편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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