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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ul 17. 2024

목공방의 변신

타인과의 인연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준호샘!

요즘 기분은 어떠신가요?

몇 개월 전에 다친 손가락은 완전히 나으셨겠지요.


착한 부인 권 선생님도 여전히 준호샘 곁에서 친구처럼, 엄마처럼 머물러 계시겠네요.

연일 비가 오는데 건물에 어떤 문제는 없는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아, 이웃집에 새 건물도 다 지어졌나요?

준호 샘네 공방건물보다 예쁜가요, 어떤가요? 호호.




제가 처음 <나무풍경> 목공방에 들어섰던 날이 생각나요.

7~8년쯤 전일까요?

그때 저는 머릿속도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해서, 새로운 것에 몰두하고 싶었나 봐요.


문을 열자, 낭랑한 풍경소리가 울리고 약간 매운듯한 나무냄새가 공방을 메우고 있었죠.

나무판을 재단하는 기계소리, 톱밥먼지, 벽에는 여러 가지 목공 도구들이 가지런히 걸려있고,

마감용 도료, 장갑......

좀 정신이 없었지요.


"가구를 만들고 싶은데요."

"처음인데 할 수 있을까요?"


"네, 제가 도와드리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저기 있는 가구들도 회원분들이 직접 만든 거예요."

"만들고 싶은 가구를 그리고 사이즈를 정확하게 정하셔야 해요."


한쪽 벽에, 파스텔컬러로 마감 중인 아기자기한 장식장이 놓여 있었죠.

유치원 원장님이 아이들이 사용할 가구를 만드는 중이라면서 제게 보여주셨어요.


부부가 운영하는 공방의 분위기는, 문 밖 세상의 속도보다 느리게 느리게 느껴져서 

"휴--"하고 한숨 쉬어가는 쉼터 같았답니다.

저보다 젊은 분들이 왠지 '깨달은 사람들'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고요.

전 마음이 놓여 바로 등록했지요.


깊이가 넉넉한 서랍장을 두 개 만들기로 하고 규격을 정하고 나무도 정하고. 

나무를 자르는 작업은 위험하니 준호샘이 해주시고, 사포질, 색칠하기, 전동드릴 쓰기, 마감까지 제 손으로 마쳤잖아요.


하늘색을 빈티지한 느낌으로 조색해서 완성한 쌍둥이 서랍장 두 개, 지금도 재산목록에 넣고 잘 데리고 살지요. 서랍을 때마다 나무향이 솔솔 나서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따라옵니다.


두 분 목공방 부부가 재능기부 봉사도 하신다는 걸 알고 저도 동참했던 기억이 나요.

장애우들을 찾아가서 간단한 목공 체험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를 보조로 몇 번 써 주셨지요.

<나무풍경>에는 서로 돕는 문화가 자연스러웠고, 좋은 사람들이 늘 들락거렸던 것 같아요.

두 분의 이타심과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젊은 부부에게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또 세월 따라 저는 목공방에 발걸음이 멀어지고......




제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울증으로 인생의 고비를 넘고 있을 때, 두 분이 저를 찾아오셨죠.


"공방을 새로 지으려고요. 사장님이 지어주세요."

"어머, 이젠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데요."

"안 돼요, 제 집은 꼭 사장님이 지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나무풍경>은 저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단층 조립식 건물을 철거하고 4층짜리 상가주택을 신축해서 준호샘 부부는 건물주가 되셨습니다!

저도 "내 집 짓는다"하고 매일 현장에서 빗자루 들고 살다시피 했지요.

제게는 공방신축현장이 힐링센터가 돼 주었어요.


준호샘! 

한편으론 뿌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건축비 때문에 돈걱정도 만만치는 않았지요?

저는 직업으로 집을 지었지만 건축주들은 집 한 번 짓고 10년 늙는다는데 고생 많으셨어요.


장마에도 아직 아무런 하자가 없다 하시니 우리 둘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아무리 잘한다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준호샘이 복을 많이 지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

지난봄에 나무풍경 화단에 핀 하얀 철쭉꽃사진을 보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두 분이 제게 "우린 만족해요."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저는 이제 집 짓는 일 안 하고 '노는 일'을 합니다.

조기은퇴로 잠시 허전했지만 지금은 아주 좋아요.

잘 놀기 위해 배우는 게 많아요. 일주일이 바빠요.


준호샘과 권 선생님의 러브스토리를 제가 들었잖아요.

두 분이 직장에서 만나 사귈 때, 준호샘이 직장일로 부상을 입었고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준호샘 곁을 권샘이 지켜주다가 결혼하셨다고요. 그래서 지금도 몸 쓰는 일에는 취약하시다고요.


준호샘곁에 권샘이 계셔서 저는 마음이 놓여요.

두 분 모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작은 것에 자주 행복해하면서 사시길 바래요.

사소한 일에도 자꾸 행복해지면 마음이 튼튼해지고, 그러면 몸건강도 따라오겠지요.


저도 그럴게요!!!


2024년 7월 17일 / 나무풍경 현장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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