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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ul 24. 2024

단야언니의 치유시간

고요하게 스스로 다스리는 당신은 수행자!

오늘은 장마 중에 모처럼 날이 좋아요.

이따가 저녁 나절에 저수지 주변 데크길로 사드락사드락 산책을 다녀오시면 좋겠네요.

무더위가 청명한 가을을 데려올 때까지 불타는 여름을 어떻게 견뎌볼까요?

단야언니, 체육관 수영장엔 여전히 잘 다니시죠?


이젠 걸음걸음에 힘이 실리고, 지팡이 버리고도 안전하게 걸으시는지요.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편히 앉아서 긴 시간 드라이브도 거뜬하신지요.

전에 만났을 때 많이 회복돼 보여서 지금쯤은 다 나았기를 기대합니다.


단야언니가 욕실낙상사고를 겪은 지 2년이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사고 후에도 대수롭지 않게 우리들과 만나서 식사도 했는데 이렇게 탈이 날 줄 어찌 알았겠어요.

고관절에 금이 간 정도로 사람을 이렇게 꼼짝 못 하게 하다니요.

긴 시간을 회복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우리는 또 헤어지면 잊고 사는데......

단야언니의 외로운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은근히 매력 넘치는 단야언니를 서실에서 처음 만났죠.

번개 같은 세월 25년이 지나갔습니다.

서울말을 쓰면서 제게 친절하게 말 걸어주셨죠.

수수하면서도 고급진 분위기의 선배가 저의 낯설음을 걷어주었지요.


서실 중하선생님은 우리에게 엄하게 지도를 하시는 편이었어요.

디테일한 붓의 공력을 끊임없이 지적하는 선생님께 꼬박꼬박 말대꾸를 잘하던 단야선배!

난 고개를 숙이고 키득키득 웃음을 감추던 일이 생각나서 지금 또 웃어요.


전시회나 공모전 준비하느라 서실 분위기는 살벌한 긴장으로 터질듯한데

"이게 어때서요? 난 이게 더 좋은데?"

크아! 어이없는 선생님이 붓을 탁 놓고 할 말을 잃고, 우리들은 속으로

"야! 진짜 강심장이다."

"철이 없는 거야, 천진한 거야?"


단야언니는 자기 공부에 매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떤 작품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했었죠.

그러니까 예술적인 감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죠.

꼭 서예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림, 무용, 음악등 감상의 포인트가 남달랐고 예리하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부러운 능력자!


단야언니의 이력도 저를 놀라게 했어요.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무용을 포기했다.

젊은 시절 규모가 큰 한문, 서예학원을 운영했었다.

남편 따라 전주로 이사를 와서,

다시 한국무용을 배우고 서예를 공부하고 있다.


저도 한국무용을 배우러 언니 따라 강선생님께 갔었잖아요.

거기서 지금의 장구선생님을 만나 여전히 장구공부에 열심이고요.

우리들의 인연이 엮여서 우리들의 역사가 쌓여갑니다.




단야언니가 남편의 과잉보호를 받고 살아서 사회적 능력을 못 키웠다고 한탄을 하셨죠.

은행일도 몰라, 부동산도 몰라, 재산도 몰라......

하나에서 열까지 남편이 다 해줘서 무능자가 됐다고 푸념을 하시는데.


저는 그 말 듣고 염장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흑흑

그때 우리 서실에 유한마담이 몇 분 계셨죠.

유한마담들도 불만이 많으시더군요.

늘 회장님 같은 남편들이 모시고 다니더구먼.

저는 돈 벌고, 독박육아에, 공부까지 하는데 저를 부러워하시다니요.


단야언니,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추억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묵향> 멤버들도 이제 나이 들어 노인의 삶 속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유자적하면서 스스로를 돌보는 단야언니가 자랑스러워요.

산자락에 계곡을 품은 전원주택도 마다하고 수영장옆 빌라에 와서 운동하고, 저수지 산책을 꾸준히 하는 거 정말 잘한 선택인 거 같아요.


사소한 사고로 길게 고생하시니 억울하고 속병이 날만도 한데, 곡절의 시간을 잘 견디고 묵묵히 걷는 단야언니의 모습이 수행자와 같습니다.

남편이나, 아들 며느리의 수발은 그대로 받으시고 혹여 서운 점도 단야언니는 지혜롭게 넘길 수 있죠?

약도 식사도 잘 챙겨 드시고, 잠을 푹 자는 게 좋대요.


한 가지 걱정은, 단야언니는 요즘도 매력이 그대로라 산책 중에 중년의 신사들이 막 말 붙여오면 어떻게 할래요? 입을 닫고, 턱을 살짝 들고, 고개를 돌리며 곳을 바라보는 퍼포먼스가 멋진 단야언니! 후후


바람이 좀 서늘해지면 우리 만나요.

그땐 단야언니 다리에 힘이 붙어서 우리 함께 아중저수지의 데크 산책길을 끝까지 걸어보고 싶어요.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새삼 고마운 오늘입니다!


2024년 7월 24일 / 운초 보냄

아중저수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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