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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ul 31. 2024

디테일정, 나의 선생님

몸짓과 소리의 관계 - 치열하게 구분 짓기

우리 정재훈 선생님!

얼마 전까지 불편해하던 발뒤꿈치는 많이 좋아지신 거죠?

권투도장을 쉰다고 한 뒤로는 다행히 아프다고 안 하시네요.


자기공부하랴, 우리들 가르치랴, 번거롭기도 하련만

학생보다 더 성실하게 몸관리하고, 시간 지켜 연습실에 나오시는 정선생님 모습을 보고 저는 늘 반성합니다.

매일이 노는 날인데도 말로만 잘하고 싶다고 되뇌면서, 장구가 갈수록 어려우니 어쩌니 불퉁거리는 저는 진짜로 많이 반성해야 맞지요.


몸 쓰는 악기를 늦배워서 멋지게 연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저의 과한 욕심이겠지요.

그나마 정선생님을 만난 인연으로 젊은 회원들과 공부하고, 공연에 동참하는 것이 제겐 큰 보람입니다.


엊그제도 한옥마을에서 선생님들과 회원들이 함께 어울려 풍악을 울리고, 관객들과 들썩들썩 저녁나절을 한판 잘 놀았네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스스럼없이 한데 어울리는 걸 보면 우리 전통 악기의 다문화적 공감력이 매우 높은가 봐요.

일요일 저녁공연이라 관객이 없을까 봐 좀 염려했었는데 왠 걸요, 우리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杞憂)였지요.




정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때를 생각해 봅니다.

2017년 1월 한국무용 강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지요.

제가 쉰 살에 취미로 한국무용을 시작했다가 목디스크 수술을 하고는 그냥 쉬고 있던 참이었어요.

건축사업을 활발히 할 때라 취미활동은 잠시 접고 있었죠.


"운초, 장구 한번 배워볼텨? 우리는 먼저 시작했는데 배우고 싶으면 나오세요."

무용연습실에서 네 명이 6개월 전부터 장구 기초를 배우고 있는데, 제가 뒤늦게 합류해서 다섯 학생이 매주 1회 수업을 받았지요. 그때 제가 쉰다섯이었고 제일 젊은 정샘이 어른들을 가르치고 계셨죠.


강선생님이 정선생님 무대 공연을 보고는 홀딱반해, 대기실로 쫓아가서 부탁 부탁하고  모셔왔다는 후문을 수도없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장구채를 잡을 줄도 모르면서 '궁따 궁따' 따라 치던 것이 8년이 흘러 오늘이 되었습니다.

제가 배우는 것에 욕심이 좀 있어요.

잘해보려고 선생님의 구음과 연주를 보고, 듣고, 쓰고, 외우고, 따라 치는 연습을 끈기 있게 했어요.

무용연습실이 비는 주말에 혼자서 세 시간씩 개인연습을 하고 다음 수업에 들어갔지요.


선생님은 여지없이

"그게 아니고, 이렇게, 따따따따"

"그게 아니고, 이렇게, 궁궁궁궁"


늙은 학생들은 긴장과 한숨 속에 말귀는 못 알아들으면서도 생짜로 힘껏 팔을 휘둘러 장구를 쳤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아프다, 바쁘다, 좀 쉰다, 그렇게 학생들이 차츰 떠나고 결국 저 혼자 남았었죠.

정샘한테 장구를 배우려면 '인내'가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정샘이 우리를 가르치는 '인내'는 더욱 큰 줄도 잘 압니다.


정선생님은 너~무 잘 가르치는 선생님.

너~무 디테일하게 가르치는 선생님.

그래서 학생들이 다 도망갈 때까지.

그래서 남은 학생만 실컷 가르치는 선생님 맞죠?




2020년 봄!

제자라고는 열 살도 더 많은 아줌마, 저 하나를 데리고 정선생님이 금암동에 만든 우리 연습실!

선생님의 큰 그림을 잘 모르는 저도 방음 공사등에 힘을 보태며 쾌적한 공간을 완성했지요.


꽹과리 유선생님, 소고 송선생님까지 합류했으니 이제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와야 한다.

저만 속으로 근심을 하는 것 같고 선생님들은 태평하게 아무 걱정이 없으시고......

선생님들이야 실력 탄탄한 프로 플레이어들이지만 저는 외로웠습니다.


자고로 연못을 파 놓으면 고기가 모인다고 했던가요?

악기 좀 만져본 선수들이 신선한 연습실로 속속 들어왔지요.

정선생님의 디테일 신공에 떠날 사람들은 또 떠나고 견딜 사람들만 남아서 실력을 갈고 닦는 중.

수강료도 없이 회원관리만 하는 선생님들께 보답할 날이 언제 오려나......


"작은 소리를 잘 내는 게 실력이죠."

"무릎을 확실히 들어요."

"왼팔과 오른팔의 위치를 정확히 정해요."

"팔을 던져서 힘껏 치고 바로 힘을 빼요."

"궁소리의 여운을 채워놓고 채편을 달래요."

"겨드랑이를 먼저 살려서 선을 예쁘게 만들어요."

"거울을 봐요, 그게 예뻐요?"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딴 거 되는 거예요."


선생님!

우리는 어차피 선생님처럼은 못하겠죠?

그래도 자꾸 선생님 흉내를 내다보면 아주 조금씩 장구소리에 입체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숨짓, 고개짓, 손짓, 발짓, 웃음짓......

정확히, 몸짓에서 장구소리가 나온다는 게 분명하고도 신기한 사실이죠.

사람들이 저와 선생님이 점점 닮아 간다고 하네요.

오랫동안 선생님 흉내를 내다보니 진짜로 닮아지나 봅니다. 하하


그러나 저러나 정선생님의 학위 논문은 언제 마무리가 될까요?

선생님의 공부열정이라면 곧 결실을 맺을 것 같은데요.

짝꿍 김선생님도 함께 무난히 연구 마치고 어서 졸업하시길 바래요.


정선생님이 문화인류학 박사가 되는 날,

선생님께 어사화를 씌워 드리고 우리가 놀음 한판 제대로 벌여야겠어요!


2024년 7월 31일 / 오래된 제자 운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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