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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Aug 14. 2024

당신(x-hus),잘 지내죠?

돌싱 10년 차에 당신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뭐라고 말을 할까?

그 후 10년이 흘렀네요.

당신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같은 소도시에 살면서 우연이라도 마주쳐지지 않는 게 참 신기하죠?


뒤돌아 보면 당신과의 추억엔 늘 '불편한 호흡'이 동행했던 것 같아요.

난 명랑하지 못했고, 억눌린 불안과 회한의 자책을 내 정서의 밑자락에 깔고 살았으니까요.

그런 아내와 사는 것이 당신이라고 얼마나 좋았을까요?


섣부르게 짧은 연애와 결혼이 준 선물, 이혼!

이런 말 하기 정말 미안한데, 당신과 결혼하고 일주일 만에

"아뿔싸! 잘못됐다."

나는 판단이 됐어요.


어쩌면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녀가 사랑이라는 혼돈의 호르몬을 얼른 뒤집어쓰고 미래를 담보로 모험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간호대 동기 중에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결혼 10일 만에 되돌아왔는데, 그땐 그게 우스웠거든요.

그런데,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 가서 내가 그 친구를 용감한 현자(賢者)로 인정해 주었어요.


난 판단만 했을 뿐, 실천하지 못하고 담보 잡힌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냈죠.

내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나와 내 형제들에게 떳떳한 일이라는 생각에 매어 버렸고,

무엇보다도 사실 용기가 부족했던 거죠.


그렇게 이십 육년을 살고, 남매를 키워내고, 나도 경제력을 갖추고, 아이들은 둘 다 미국유학을 보내고,

신도시의 핫스팟에 평생 살 거라고 멋진 이층 집을 짓고, 결국엔 당신에게서 이혼소장을 받고......




당신은 정말 성실하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었죠.

결혼생활 중에도 엔지니어로서 갖추어야 할 최고의 스펙을 완벽하게 갖추었지요.

공학박사, 기술사, 대기업 소장......


타인들 앞에선 우리 가정이 가장 빛나야 하고, 우리 가족 내에선 가장인 당신이 가장 높아야 했죠.

아이들도 너무 일찍부터 가부장적인 아빠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난 중간에서

아빠의 폭언, 때로는 폭력을 막아주지 못하는 엄마,

자식교육을 제대로 못 시켜서 애비를 우습게 알게 하는 아내가 됐죠.


난 당신이 부재중에만 숨쉬기가 편했습니다.

아이들도 눈치를 알게 된 후부터는 아빠 없이 우리 셋이 있을 때, 그 해방감에 모든 음식이 맛났고, 허공의 공기마저 청량감이 몇 배가 되고, 천진한 웃음소리가 하늘로 드높아졌습니다.


우리라고 왜 애틋한 시절이 없었겠습니까?

우리 가정에도 행복한 추억이  많이 있었죠.

첫째 딸아이가 아기 때 유난히 출근한 아빠를 찾아서, 울며불며 자주 통화를 해야 했던 달콤한 추억,

산으로 계곡으로 네 식구가 동반 나들이 하던 추억, 강아지 달래가 새 식구가 된 후로 재롱을 함께 지켜보던 추억, 처갓집 식구들과 와글와글 함께 놀던 얼큰한 추억들.


내가 당신을 평가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도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이혼 소송의 과정이었어요.

내가 일찍 부모를 잃어서 피해의식이 강하고, 남자를 이기려는 근성을 갖고 있어서 가장을 무시하고 소홀히 대접한다.


당신의 분석 중 '가장을 무시함'은 나로서는 속수무책의 낙인이었고, 나머지 이혼사유는 소설이었죠.

내가 호사취미로 가산을 탕진하고, 술에 취해 시부모를 폭행하며......

이런 소설은 안 써도 될 것을.

당신을 포함한 시집식구 누구보다도, 난 가사노동으로나 금전으로나 시댁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겼는데.


난 간호사였을 때 결혼 때문에 퇴사하고, 신혼 때에는 당신도 없는 집에서 시부모님과 2년을 살았죠.

우리가 거주 할 신혼집을 산 것처럼 말하더니, 시부모님이 교묘히 들어와서 함께 살아야 했고, 당신은 현장살이 하느라 어쩌다 집에 왔고, 난 매일 베갯잇을 적시며 잠들었습니다.


시부모님 가게 종업원들까지 밥 해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새벽밥을 해서 시아버지 출근 시키고, 나중에 잠 깨는 시어머니 밥상을 또 차렸습니다.

큰 애를 가져서 입덧을 해도 살림은 내 차지였고, 굶고 어지러워 유산기가 있어도, 배가 불러져 허리가 시큰거려도 묵묵히 버티고 건강한 딸을 낳았죠.


당신 가족이 부모형제간에 불화했고, 그 과정에서 대판 싸우고 덕분에 2년 만에 분가를 해서 난 좋았어요.

아이들 키우며, 자격증도 따고, 건축사업 잘하고, 다 잘 돼 가는데 당신은 가장대접받는 게 부족해서 나를 가만 두지 못 했나 봐요.


나도 일하면서, 남의 손 한번 안쓰고 살림하고 가족 뒷바라지하고, 심지어 당신네 선산 나무 심은데 나혼자 물주러 다녔던 일도 생각이 나네요. 흠흠.

지난 일 열거 하자니 웃음이 나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그 가장대접!

일체의 사업을 접고 집안 살림만 해라?




왜 그랬어요?

이혼을 원하면 협의이혼하면 되는데 굳이 이혼소장을 내 남동생한테 보내다니요?

애들 유학 가고 둘 만 살면서, 난 스트레스로 구안와사도 앓아야 했고, 너 돈 잘 버니까 생활비도 안 준다 끊고, 이혼이 감사한데 뭔 소송입니까?


당신 덕분에 몇 천, 애들 한 학기 유학비가 날아갔죠.

소송 시작부터는 애들 유학비  푼도 안 줬잖아요.


이혼을 원하는 사람이 이혼판결에 항소를 해요?

항소심 끝자락에 내게 편지를 보냈죠?

모든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난 들어줄 수 없었어요.

내 꿈이 이혼인데 당신이 꿈을 이루어주고 있는데 멈출 수 없었고, 갖은 모함으로 나와 내 친정 형제들을 모멸하는 소송전의 무의미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더군다나 이혼을 원치 않으면서 이혼소송을 하다니요?


내가 되돌아가지 않자 당신은 항고했지요.

당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고, 당신도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대법원까지!

5년 가까이 걸린 소송의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금전손해로 끝났죠.


당신은 더군다나 협의이혼이 훨씬 나을 뻔했죠.

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끝장을 보자니 어쩌겠어요?


근데 나한테 진짜 왜 그랬어요?

난 이혼을 실천할 의지까지는 없었는데.

내가 간절히 원해도 당신이 절대 안 해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결과적으론 감사하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내상이 컸던 건 사실이에요.

쿨하게 이혼했으면  좋았을 것을.


진심을 말해야 할 때는 꼭 진심을 말해야 해요.


마음속엔 A를 정해 놓고 입으로는 B, C, D..... 를 말하면서,

상대방이 A처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부조화 아닌가요?

상대방은 지치고, 결국 관계의 파탄이 오지요!




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쓸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절제된 언어로 명랑하고 우아하고 고급진 문장을 이어 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안 됐네요. 

그래도, 대답을 듣지는 못해도 나로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나니 좀 시원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연, 행운, 운명, 이런 것에 마음을 돌립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보내야겠다고 생각해요.

뜻대로 안 된 결혼생활에, 헤어짐도 방편이 되고, 그것도 순리였으리 생각합니다.


당신도 벌써 은퇴 후의 삶을 보내고 있겠군요.

새벽바람줄기를 보니 여름더위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는가 봐요.

가을이 오면 좋은 데로 운동도 많이 나가고 날마다 즐겁게 보내세요.


부디 정신도 육신도 건강한 여생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4년 8월 14일 / x-wife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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