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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Aug 07. 2024

그립다, 국희의 미소

우리 올 추석에 만나.

국희야!

요새 같은 찜통더위에도 얼핏, 하늘이 청명해지고 있는 것이 보여.

지독한 더위가 어서 가버렸으면 하다가도 아까운 세월을 등 떠미는 것 같아서 입을 꾹 닫는다.


가족들 모두 잘 지내고 있지?

천사 같은 남편도, 국희도, 완전 건강회복하고 여유롭게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편안하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연로하시니 수시로 보살펴드리는 수고는 여전하겠구나.

우리도 노인의 여정을 뒤따라가고 있지.

돌봄, 집집마다 피할 수 없는 숙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방도가 있으면 좋을 텐데.....


큰애가 딸이지.

일본에서 일류대학에 갔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번역작가가 되었네?

정말로 축하해!!!

국희는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순리대로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네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어.


막내아들도 공부 잘 마치고 자리 잡았겠구나.

한 2년 못 만나고 간단히 소식만 주고받았더니 보고 싶어.

곧 추석이 올 테니까 친정에 다녀갈 때 꼭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자.




우리 여고 때 국희는 참 이뻤지.

항상 웃는 얼굴에, 말 속도 예쁘고, 목소리도 옥구슬 같았고, 몸매도 날씬하고......

우리 둘이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잘 어울렸었지.


짓궂은 놀음은 기억이 안 나네.

참 재미없게 놀았나 보다.

내 기억 속엔 우리 교복생각만 선명히 남아있어.


흰 셔츠에 녹색치마를 입은 국희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오던 국희.

여고시절의 3년을 같은 반에서 사고 한 번도 안치고 졸업했다, 우리.


각각, 대학을 가고 진로를 따라갔다가 내가 이른 결혼을 선택했을 때

결혼식 전날밤을 국희가 나와 함께 보내 주었지.

그때 나를 좀 말리지 그랬어, 하하.


우리 애들이 아주 어릴 때  두 집 식구가 만나서 어느 유적지에 잠깐 놀러 간 적이 있었지.

아장아장 걷던 아기들하고 찍은 사진이 떠오른다.

우리 둘이 흘려보낸 세월에 빈틈이 너무 많아서 국희에게 미안하고 괜히 서러운 감정이 북받친다.


못 보고 지내는 사이에 나는 이혼을 했고, 우울증을 앓았고,

국희는 항암치료를 하고, 보령에 전원생활을 계획하고, 완치판정을 받고, 우리는 다시 만났지. 

그런 저런 곡절을 묵묵히 견디다 보니 난 갈수록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것 같았어.


이제 난 일을 하지 않아.

책 읽고 글 쓰고 취미활동하면서 한량처럼 세월을 보내고 있지.

처음엔 불안하고 힘들었는데 이젠 괜찮아.

그래도 수시로 "허송세월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우울해져.

나 스스로의 기대치를 더 내려놓아야 할 건가 봐.


국희 네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여전히 가족들과 따뜻이 소통하고 지내는 것에 난 정말 감사해.

너의 남편을 볼 때마다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여전하시지?

건강관리 잘하고 잘 지내다가 빛나는 얼굴로 만나자.

무더위가 곧 물러가고 나면 추석이 오네.

올 추석은 일찍 온단다. 

전화할게. 

안녕!!!


2024년 8월 7일 / 여고동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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