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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정원문화센터

제가 이 동네로 이사 왔어요

by 화수분

한 달이 지났네요.

이 동네로 이사 온 지가.

원래 모르는 동네가 아니었고요.

이 동네에 제 집이 있었어요.

3년 전에 제가 직접지은 다가구 주택이 있는 동네예요.

그 집 4층에 세입자가 살았었는데 이젠 제가 이사 왔어요.

전에 살던 아파트는 뷰맛집이어서 아침에 거실에 나오면 창밖으로 자연이 가득했어요.

여기로 왔더니 창밖의 뷰는 집들의 옥상과 교회 지붕과 전봇대 꼭대기가 스카이라인을 차지하고 있네요.

시원하게 숨통이 트이려면, 나무와 풀과 꽃과 흙이 좀 필요한데......

전주정원문화센터의 마당


다행히 걸어서 3분 거리에 마땅한 공원이 있어요.

예전에는 버려진 것같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원이었는데,

오랫동안 공사를 하더니 <전주정원문화센터>를 번듯하게 오픈하더라고요.

우연히, 오픈행사를 하던 날에 제가 이곳을 탐색했었어요.

그때는 나무도 흙도 아직 자리잡지 못해서 들뜬 채 엉성했었죠.

2년이 다 된 지금은 나무뿌리가 흙과 잘 엉겨졌는지 제법 단단하게 버티고 있네요.

잔디와 사초와 꽃들도 마땅한 곳에 자리를 잡았고요.


2층짜리 건물이 실내식물원과 도서관, 정원사교육실입니다.

식물원은 2층 높이의 층고에 키~큰~열대 식물들이 살고요.

키 큰 나무아래로 선인장, 양치식물, 덩굴식물들이 조화롭게 가꾸어져 있어요.

작은 폭포도 있어서 물이 흘러내릴 때는,

경쾌한 물소리와 미세한 물의 입자가 눈과 귀와 피부까지 즐겁게 해 줍니다.

쪼금 아쉬운 점은 얘네들 이름표가 더 촘촘히 달렸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금도 대부분은 달려 있는데 가끔 제가 모르는 애들은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어서요.


도서관은 2층에 있는데 자연에 관한 책들이 빼곡해요.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가도 마음껏 자유롭게 책을 뽑아 볼 수가 있어요.

그림과 사진으로 멋지게 엮어놓은 책들은 그냥 펼치기만 해도 힐링입니다.

저는 올여름을 얌체같이 이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어요.

주차걱정 없고, 시원하고, 늘 앉을자리가 있고, 책 읽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냉커피 텀블러와 읽던 책을 챙겨 들고 잠깐 걸어가서,

유리문을 밀고 정원도서관으로 쏙 들어가면 여기가 천국!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으니까 자주 휴식을 하는 게 좋아요.

잠시 쉬고 싶으면 그림책도 펼쳐보고 열대식물들을 내려다보기도 해요.

유리창 밖으로 하늘과 마당도 번갈아 봅니다.

가을이 오고 있어요.

마침 어제 입추절기도 찾아왔고, 또 하늘과 구름의 입체감도 정말 예사롭지 않네요.

이상기후 때문에 걱정걱정해도 음력 절기는 어김없이 우리에게로 계절을 데려옵니다.

믿음직한 자연의 조화에 감사드려요.


정원문화센터의 밤풍경


저녁 산책을 정원문화센터로 나왔어요.

낮에는 마당분수에서 물놀이하는 아기와 젊은 엄마 몇몇 밖에 없었는데, 밤이 되니 동네사람들 다 나왔나?

정원센터마당이 가족, 연인들로 그득해요.

저는 사람들 밖으로 가장 큰 원을 그리며 산책을 했습니다.

라임라이트 수국꽃이 조명 밖에서도 희게 빛나서 그 꽃을 쓰다듬으며 걷다 보면 한 바퀴, 또 걷다 보면 두 바퀴...... 별처럼 빛나는 조명과 저 혼자 빛나는 라임라이트 수국꽃을 뒤로하고 언뜻 선선해진 저녁바람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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