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사람들은 무료하거나, 저자거리 생활에 힘들어 할 때 여행을 떠난다.
산을 찾기도 하고, 넓은 바다를 보며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이며, 역사가 내게 던지는 교훈과 우리 문화재가 주는 진실에 사색하고 사고하며 나를 찾아 가는 살짝 틀어진 답사여행을 할 뿐이다.
자주 길을 떠난다. 누군가 깨끗이 쓸어놓은 길을 감사하며 그렇게 밟고 간다. 때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도 있다. 먼 길을 돌아 갈 때도 있고, 험한 길을 헤치고 갈 때도 있다. 나름대로 상상하며 길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길이 아닌 길도 갈 때도 가끔 있다. 구닥다리 카메라 둘러메고, 어쩌다 솜씨 없는 터수에 스케치 북 하나 있으면 그만이고, 수필집 한 권 넣고 나면 가슴엔 행복한 포말이 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오는 땀방울이 기분 좋게 하는 이유란,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횡재수가 있어서다. 산길에서 반기는 이름 모를 야생화 몇 송이 가냘프게 피어 있다거나, 답사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석탑 부스러기를 발견 했을 때 들려오는 가슴의 환호성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굽이친 길을 돌아설 때 불어오는 단 맛의 바람은 청량한 범종소리로 변화되는 신기로 몸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고, 그렇게 길을 따라 가다보면 마지막엔 우리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반기고 있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이끼처럼 켜켜이 묻어있는 그곳! 옛날의 절터 폐사지다. 햇살도 색을 달리하며, 부는 바람도 잠시 숨을 멈추고 쉬어간다. 어떤 날엔 내리는 빗방울도 더 투명해 지는 개운한 즐거움이 있다. 자작자작 걷는 발걸음에 사색이 묻어나고, 삶에 힘겨웠던 시간도 맑게 정화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며, 미술사가도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걷고 웃고 춤춘다. 전문가들의 노력이 담긴 수많은 책을 찾아 읽고 그 속의 지식들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려 애를 쓴다. 지식의 생산자로서가 아니라 유통과정을 거쳐 지식과 감성을 적당히 버무린 소매점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답사지에 서면 고증을 일삼지 않으려 애쓰는 여행객일 뿐이다.
그리고 문화재 내면의 고통과 절박한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하층민들의 피와 땀을 기억해내며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감탄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적 사치에 길들여지길 거부하며, 어쩌면 진실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좁은 가슴을 연다.
사실 더 한 것은 오다가다 만난 사람의 인연에 짙게 배여 있는 삶의 진실이 숨어있어서다. 그 인연에는 세상사 고달픔을 잊게 하는 숨은 마력 같은 지혜가 담겨져 있으며, 사람의 진솔한 향기가 잔잔하게 품어져 머리와 가슴까지 맑게 해 주곤 한다.
이 모든 게 문화재와 역사의 현장 답사장이로 살아온 삶이 이토록 행복한 까닭이다. 역사와 애환과 선현의 삶을 거슬러 오르면 종교의 편협함도 없으며, 강요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늘려있기도 하다. 그렇게 다녀와 메모와 사진을 정리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상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것은 미련이 남아서요, 모자란 감성에 저급한 욕심이 있어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거 찾아다니면 밥이 나와요, 술이 나와요?”
미련한 애착을 보다 못한 아내가 내게 하는 말이다.
'가끔 술밥도 얻어 먹는데...' 라며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다.
기실 거창한 문화재 답사라는 말보다 아마추어의 시각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다. 돌아와 답사의 마무리, 답사기를 쓸 때 잔잔한 사색의 느낌 그대로만 담겨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나의 감동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미래의 기억’이 바로 꿈이며 소망이라면, 그 꿈의 종착지는 결국 답사의 궁극적 목표와 같다. 착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함이며, 그러면서도 가슴은 따뜻하게, 짧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만큼은 아닌 이 세상을 알뜰하게 살아가다 행복하고, 즐겁게 죽어가고 싶은 욕심이다. 결국 답사 여행이란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보약이다.
바람이 불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또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