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기억이라 약간의 픽션을 가미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제사상 차려 놓고 큰형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래 도시의 하이에나로 살아갈, 한량이라 이름난 큰형이 할아버지 제삿날을 기억할 리 없다. 오늘도 어제처럼 친구들과 거나하게 마시고 있는 듯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달리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결국 식구 중 제일 만만한 내가 온 읍내를 찾아 헤집고 다녀야 했다. 형 친구 집을 속속들이 찾아 헤매다 나의 촉수에 딱 걸려들었다.
시절도 좋아라! 경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되지도 않는 친구들과 남산아래 쪽방촌 방석집, 즉 니나노 집에서 한복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과 젓가락 장단에 맞춰 한세월 죽이고 있었다. 비릿하고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화장품 냄새는 금방 구분이 되었다.
밖 쪽마루에 걸터앉아 창호에 난 문구멍을 통해 방안의 동정을 살펴보니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면 옆에서 젓가락 장단에 합창하며 돌아 돌아서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도 기가 막히게 장단맞게 두드리는지 감동에 현장학습 기분으로 열심히 관람하다가 형 차례까지 기다렸다.
형이 막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가~~ 아~~ 아아 려~ 언다~~!”
하며 ‘무정천리’를 구성지게 뽑으려 하는 찰나에 방으로 불쑥 들어섰다. 형은 강남꽃 보다 더 붉은 얼굴로 인상 팍! 하고 구기더니,
“임마 니 일루와라! 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노?”
이때 평소 안면 많은 형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놈 이거 한잔 먹여라!”
해서, 한복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부어주는 막걸리 한잔 원 샷을 하니, 형 친구들이 잘 마신다 하면서 또 한잔 원 샷하고, 내리 석 잔 마시고 나서 나도 마신 김에 노래 한 곡 뽑고, 앙코르 받아서 한 곡 더 뽑고, 또다시 형 차례가 돌아오는 그때, 아까 못다 한 ‘무정천리’를 막 부르려는 순간 형 옆으로 살살 기어가서 한마디 했다.
했더니만, 이눔시키가 그걸 이제야 이야기한다고 또 한대 쥐어 박혔다. 그래서 용감한 형제는 붉그대대 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눈을 부라렸지만, 날이 날인지라 아무 말씀 않으셨다.
그러다 가만…! 술기운에 뽈또그래진 볼에 콧평수 넓게 해서 생글생글 웃는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란 놈이 형 찾으러 갔다가 취해서 들어온 그 꼴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래도 날이 날인지라 ‘흠흠’ 헛기침 날리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술 냄새 팍팍 풍겨가며 절하고 아버지 제문 읽어 가는데 얼마나 긴 문장인지 겨우 참았다. 그런데 결국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제사 순서 중에 부복이라는 것이 있다. 밥그릇에 숟가락 꽂고 꿇어 엎드린 후, 오신 조상님 후손들 눈치 보지 말고 많이 드시라고 모른 척 해 주는 것인데, 아버지가 ‘음음’소리를 내며 일어서자 우리도 따라서 일어났다.
그런데 술이 고주망태가 된 형이 일어나질 않는다. 무엇이 그리 잘못한 것이 많은지 한참을 계속 그러고 있더니 결국엔 코를 다릉다릉 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부리부리한 눈을 막 뜨려는데, 내가 끼어들어 형을 깨웠다.
“고마 일나라!”
했더니만, 형이 희미한 눈으로 나를 보고, 제사상을 보자 이게 마 술상으로 보였는지라!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더니,
“응? 벌써 내 차례가!”
하더니만 박수를 치면서 한 곡조 뽑는다.
전설 같은 오동추야 사건은 우리 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형이 오동추야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다.
(2005)
* 지난 일은 필연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형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다. 가끔 오동추야를 흥얼거리며 형을 추억하곤 한다. 재미를 위해 약간의 픽션을 섞어 구성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