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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解冤

세월이 약이었나

by 박필우입니다

이대로 차를 돌릴까. 아니면 예정된 길로 갈까. 교차로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교차하는 만감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뒤에서 빵빵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떠밀리듯 교차로를 건너 재회의 길로 가고 있었다.


인연의 시작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내 옆 짝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성격이 과묵하고 마음씨가 넉넉했다. 검은 얼굴에 아래턱이 두툼해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아이 같았다. 보리밥에 김치 쪼가리가 전부인 내 도시락과는 달리 짝의 도시락 반찬은 늘 풍성해 나의 좋은 표적이 되곤 했다. 고등학교가 달라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대학교 작업실 앞에서 또 그를 만났다. 얼마 안 있어 나는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더는 학업을 이을 수 없었기에 인연도 거기서 끊어졌다.


아버지는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사람과 함께 공장을 시작했다. 좋아하던 술도 끊을 만큼 전력을 다했지만, 사업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철석같이 믿었던 동업자가 마법을 부렸다. 아버지 몫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삶은 낡은 사진처럼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다시 술을 입에 댔고 나뒹구는 술병처럼 아버지도 쓰러져갔다. 혈기 왕성했던 나는 제대하자마자 동업자를 찾아갔다. 당당한 체구와 이글거리는 눈, 딱 벌어진 어깨, 굳게 다문 입술은 마치 야생의 맹수를 상상케 했다. 결국 제대로 한판 붙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아버지는 끝내 한恨을 남긴 채 돌아가셨고 그것은 온전히 내 가슴에 들어왔다.


애오라지 삶은 아버지가 품었던 한의 기억에 대해 침묵하게 했다. 좁은 공간에서 다리를 겨우 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하층민의 특권(?)을 누린 결과였다. 결혼 후에는 나만의 둥지가 생기면서 시나브로 추억과 기억을 새롭게 채웠다. 형체도 없는 시간이라는 망각의 프로그램으로 지난 기억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미움을 안고 살아가기에 인생은 짧다고 스스로 변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악연이 되찾아 왔다. 불교의 연기설처럼, 어디서 인연이 되어 나에게 지금의 결과를 낳게 했을까? 혼돈 속에 질서가 내재된 어떤 규칙성이 숨어 있어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게 하는 것일까?


악연에 대한 분노는 영원히 감출 수 없었다. 오랫동안 가업을 이어온 사업체의 명단 가운데 낯익은 주소와 이름이 들어 있었다. 내심 폭삭 망하길 기대했었다. 아버지 가슴에 비수를 꽂은 자에게 보내는 살이었다. 남에게 살을 보내면, 그 살이 되돌아와 내 가슴에 꽂힌다던 말은 아버지의 무능한 변명이었다. 그날의 일이 어제처럼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가슴이 열기로 차오르며 두근거렸다. 문득 술로 물들어가던 아버지의 흐린 눈빛일망정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꿈속에 나타나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내일 석방을 앞둔 죄수의 마음 같을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른 봄날, 맵고 스산한 바람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하늘마저 아침을 물리친 심술궂은 시어머니 낯짝같이 끄무레했다. 취재라는 내 본연의 목적도 잊은 채 악연과 재회만을 생각하자 만감이 교차했다. 문제는 복수에 대한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느냐고 악이라도 써볼까? 병들어 죽어가는 중이라면 저질의 동정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에 대고 쌍욕을 보태 잘 가라고 악마처럼 속삭여 인생의 끝에서 치욕을 맛보게 할 수도 있었다. 이처럼 궁색한 복수에 내 머리만 점점 복잡해질 뿐이었다.


고향에 도착하자 어린 시절 뛰어놀던 냇가의 반짝이는 물빛은 은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새순 돋은 들판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석탄으로 다져진 땅은 봄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내고, 분탄 위에 굴착기가 벽에 팔을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아버지의 발자국도 여기 어디엔가 찍혀있을 것만 같았다. 멀리서 사람이 아른거리자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했다. 설마?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내 짝이었다. 모래를 씹은 듯 입이 바싹 말랐다. 신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 짧은 인연을 끊임없이 연결해 놓았던 것일까. 그의 아들이었다니? 마음속에 품었던 비수를 꺼낼 수 없었다.


친구의 안내로 만난 그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다. 힘겹게 내딛는 걸음걸이와 반짝이는 흰 머리, 깊게 팬 주름살, 더구나 귀까지 먹어 내 어떤 말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또 한 번 마법을 부렸던 것일까? 지난날, 독기를 품고 내 것마저 빼앗아 가려던 과거의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환하게 반기는 모습이 천상의 소년 같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이 부담되어 애써 과거의 모습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내 가슴에 품었던 비수는 그가 보내는 눈길에 녹아버렸고, 갈등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내 아버지를 느끼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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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그에게 역광이 비춰 실루엣이 그를 신이하게 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날려 구순九旬의 경지를 더했다. 신은 이 시간을 위해 그렇게 짝을 지었던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예수의 모델이 된 청년이 16년 후, 지하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배신자 유다와 동일 인물이라는데, 신이 강요한 침묵 때문인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그는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눈앞에 투명한 막이 생기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 그와 겹쳐졌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해원解寃의 손짓인가. 나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2013)


* 글벗님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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