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밥 만큼 즐기면 심각한겨
나는 술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무척 즐겨 마신다!
낮술, 밤술, 새벽술, 해장술, 폭탄주, 싸구려 폭탄주, 반주, 합주, 이별주….
그래도 이것만은 꼭 지킨다.
내 한계를 느끼고 오감에 취기가 오른다 싶으면 절제할 줄 안다. 될 수 있으면 시비를 걸지 않지 않기 위해 침묵에 든다. 더 좋은 버릇도 있다. 취했다 싶으면 집으로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집에 들어와서도 절대로 아내에게 말 걸지 않는다. 혹시 말실수할까 싶어서다.
다년간 실수한 경험이다.
그것들이 쌓이고 싸여 지금까지 꼼짝 못 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일부러 히히 바보처럼 웃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밖에서 기분 나빴던 일들이 생각날까 해서다. 기분 나쁜 기억이 불쑥 약을 올려도 끄집어내지 않는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면 종종 상식을 넘어버릴 수 있어서다.
또 절대로 컴퓨터에 앉지 않는다.
약간이라도 삐딱한 글 있으면 마구 시비가 걸고 싶기 때문이다.
주도가 이쯤 되면 술 깨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술을 많이 마신 날은 식욕이 없고 성욕만 생긴다.
식욕과 성욕은 비례한다던가??? 그 반댄가? 하여간….
아침에 일어나 주방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보면 뭐 하나 얻어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찾던 이것, 명태 대가리 넣고, 무 넣고, 콩나물 넣고 국물 우려내서 한술 밥을 밀어 넣는다. 이마에 알땀이 맺히며 속까지 편안해진다.
두 번째,
더욱 심하게 마신 날은 식욕이 더 떨어진다.
콩나물 깨끗이 씻어서 채반에 받쳐놓고, 식은 밥에 참기름 두르고 달달 볶다가 씻어 놓은 콩나물 넣고 물 자작하게 부어 죽 끓여서 몇 술 뜨면 얼추 눈이 뜨인다.
그런 후 일터로 나가 오전에 대충 졸다가 점심에 해물칼국수나 육개장 한 그릇 후딱 비우고 사우나에서 냉온법을 사용하여 피로를 벗겨낸다.
그렇게 되어 오후가 되면 다시 술 생각이 날 정도로 깔끔해진다.
세 번째,
미쳐버릴 정도로 많이 마셨다면 어떻게 할까?
어차피 하루 쉴 상황이 못 된다.
그럴 땐 다른 방법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물김치(어떤 물김치도 다 해당된다)에 한 젓가락 정도의 소면을 삶아 말아서 넘긴다. 사실 이 방법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법이다.
술 마신 다음 날은 담배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걸 먹고 나면 곧바로 담배 생각이 날 만큼 속이 풀려 버린다.
물김치가 만약에 없다면 어찌할 건가?
그러면 총각김치나, 열무김치(깍두기도 가능) 국물 국자로 짜내 그 속에 찬물 한 컵 넣고 소금 간 약간 해서 소면 말아 먹어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네 번째,
이것도 저것도 없다면 냉동실을 뒤져보라
간혹, 묵은 미숫가루나, 유통기한이 남은 선식 가루 있을 것이다. 한 사발 타서 마셔라!
그것도 없다면 봉지 커피라도 타서 마셔라. 왜?
마시지 않으면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천불을 도무지 잡을 수 없다. 간혹 냉수에 소금과 설탕을 타서 마셔도 좋다.
그리고 한숨 쉬고 녹차 한잔 우려서 천천히 마셔라. 분명 효과가 있다.
다섯 번째,
냉수도 없다?
이쯤 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뭣보다 가장 중요한 건 위의 것 몇몇 가지는 모두 본인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마눌님이 해 주시는 것을 덥석 받아먹었다가는 술 깨는 속도가 두 배로 느려질 것이다.
서비스,
만약에 점심 반주에 취해 버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냥 쭈~욱 해 떨어질 때 까지 마셔라.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빨리 집으로 들어가 몸을 눕혀라. 금방 잠이 쏟아질 것이다. 이상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술 마신 다음 날 일어나니
집에 물김치가 다 떨어지고 없더라.
시장에서 사다가 먹을 수 있었지만
품위에 손상을 걱정하는 사대부 후손이 그럴 수는 없었다. 해서, 다시마, 다시멸치, 그리고 냉장고 속에 애지중지하던 수삼 남은 것 몇 뿌리 넣고 당귀, 무, 콩나물, 명태 대가리, 대파, 사과, 배, 배추 싱싱한 겉잎 넣고, 센 불에 한소끔 끓이다 약한 불로 정성껏 달여서 식혔다.
미리 씻어서 소금에 절여 놓은 무, 배추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실고추, 검정깨 솔솔 뿌려서 얼마 전 집사람이 사다 놓은 용량이 매우 큰 물김치 통에 잘 담아서
‘하루 익혀서 먹으리라!’
하며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물김치가 익어가는 모습을 확인하자 침이 저절로 꼴깍 넘어갔다.
어느 날, 익어가는 물김치 믿고 연습 삼아 한잔하곤 들어왔다. 술에 절고,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흐흐흐! 내겐 물김치가 있다 이거야!’ 하며 소면 삶아 건져낸 후 물김치 한 사발 가지러 갔는데, 딸아이가 베란다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주워 담고 있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한데, 낯익은 무와 배추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아래가 좁고, 높이만 긴 김치 통을 딸애가 발로 건드린 듯했다. 아마도 내가 평평한 면에 올려놓은 게 아니라, 화분 빈 받침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야말로 울고 싶었다.
김치 통이 엎질러지면서 그 압력에 뚜껑이 열려 몽땅…, 흑! 씨~~바.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 국물 우려 낸다꼬 궁상떨~때부터 알아봤다!”
뒤에서 내 삶에서 가장 얄미운 목청이 들렸다.
나는 교훈을 한 가지 얻었다.
-물김치는 익히려 하지 말고 곧바로 먹자!-
(2004)
* 오랜만에 들어와 옛글 하나 찾아 올립니다.
한가해지면 우리 글벗님들 방 알뜰하게 찾아뵙고 인사올리겠습니다.
그동안 글정도 쌓고 자잔한 안부도 전하면서 잔정을 나눈 분들 참 많은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