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죽이 왕가의 운빨 로맨스
“비나이다! 비나이다! 터줏대감님께 비나이다! 시월상달에 상 곡식 꿏죄겨 검은 시루 앞다리 선각에, 뒷다리 후각에 태산같이 삼시하고, 아무쪼록 박씨가문 말끝마다 향내 나고, 웃음마다 꽃이 피고, 낮이면 물을 맑히고, 밤이면 불을 밝혀 앉아서 삼천리, 서서 구만리를 돌보아 주소서! 동서남북 팔도강산 다녀도 실수 없이 해주시고 남대간을 져드리고 여대감을 여드려서 불이나고 늘어나게 해주소서!”
장독대 정화수 바쳐놓고 발복發福을 빌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즐겨 하던 고삿말인데, 고인이 되신 조선일보 칼럼리스트 이규태 선생의 글이다.
핏줄끼리 통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을 아래턱이 몇 센티미터씩 돌출되는, 합죽이로 진화(?)를 거듭하였다. 절대 악과 절대 선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이어온 과정은 구구절절 늘어져 600년 이상을 버텼다. 여기에 가톨릭이라는 불멸의 영혼, 인간의 나약함에 희망을 카테고리로 악착같이 기생하면서 편의에 의해 이용되거나 또 폭력에 정당성을 뿌리내린 채 당당하게 살아날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파냐 역사를 지나칠 수 없다. 1230년대,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이 지중해를 장악하면서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가 한 국가로 통일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의 이사벨 공주와 이베리아반도 동부와 지중해의 코르시카, 시칠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 허리까지 차지하며 지중해를 호령하던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혼인함으로써 연합국가의 가톨릭 왕들이 태어났다.
무시무시한 도미니크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재판만을 합동으로 운영하면서 각기 다른 주권과 정치체제로 국가를 운영했다. 국토 회복 운동 '레콘키스타(통일 에스파냐)', 즉 이슬람교도와 전쟁에 힘이 두 배로 비축된다. 교황의 독려와 칙령에 따라 이들은 이베리아반도에 하나 남은, 베르베르인이 지배했던 그라나다의 나스르왕국(알람브라 궁전)을 1492년에 멸함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지게 했다.
오스만제국에 의해 실크로드가 가로막히자 시선을 바다로 돌리면서 신대륙발견이라는 대항해시대로 접어든다. 이때 포르투갈인 콜럼버스에게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가 바로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의 이사벨 여왕이다.
“전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복 있는 나라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Bélla geránt aliī, tú felix Áustria nūbe)”
15세기, 유럽대륙 서쪽, 이베리아반도에서 지독한 가톨릭제국 에스파냐가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황금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세력균형을 맞추려는 듯 동쪽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기력이 충만을 더해가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 막시밀리안 1세(1459~1519년)가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의 제위를 물려받기는 했지만, 당시 나라의 제정상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제국의 제후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고, 툭툭 들고 일어나 괴롭혔다. 더구나 밉다 하는 프랑스의 군주들까지 왕왕 시비를 걸어왔다. 한꺼번에 해결할 대단원의 반전이 필요했다. 군사와 자금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늘은 합스부르크 편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날을 세우던 부르고뉴, 즉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지배하는 왕국의 대공 카를의 무남독녀인 상속녀 마리를 아내로 얻었다. 그녀는 누구나 군침을 삼키는 행운의 여신이었다. 네덜란드 영토를 결혼지참금으로 가져와 남편 막시밀리안 1세에게 안기자 유럽 최고의 상업 중심지를 확보하면서 날개를 단다.
여기에는 매우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다. 부르고뉴 공국 카를은 로렌 공작과 벌인 낭시 전투에서 전사하고, 상속녀 마리마저 감금당하고 말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프랑스 루이 11세가 마리를 자기 아들 샤를과 결혼시키기 위해 군사를 몰아왔다. 그러나 카를 대공이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긴다.
“마리와 막시밀리안 1세와의 결혼은 반드시 성사시켜라!”
평생의 정적 프랑스에 결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막시밀리안 1세는 재원도 부족했을 뿐더러 헝가리 왕 마차시 1세가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라 군사를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이때 상속녀 마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미래의 신랑 막시밀리안 1세에게 일생의 도박을 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을 보내 그를 도왔다. 막시밀리안 1세는 그 보물을 이용해 싸움질 잘하는 용병을 모집했다. 이들을 이용해 마리를 구출하고 프랑스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면서 동시에 신성도이칠란트의 왕좌에 오르자,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한다.
막시밀리안 1세는 ‘마지막 기사’란 타이틀을 얻을 만큼 용감한 장군으로써 오스트리아를 위해 헌신했다. 일설에 의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평가되며 온화한 성품으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종교적 믿음으로 부하들을 지휘하면서 전투에 임해서도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 전략전술에도 뛰어나 때로는 적과도 손을 잡고, 인근 나라들과 군사동맹의 체결로 안정을 꾀하는 등 외교채널을 동원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중세란 긴 터널을 지나면서 잉글랜드와 에스파냐와도 손잡아 앙숙 프랑스의 기운을 뺏었다.
에스파냐와 합스부르크 이 두 제국은 국고를 낭비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보다는 현명하고 합리적이며 평화적인 방법을 선호했다. 동서냉전 시기에 미국의 군비증강정책에 휘말린 소비에트연방이 해체의 수순을 밟았듯, 군사력의 증강은 국고가 바닥날 수도 있었다.
제국의 굳건한 동지는 사촌보다 사돈이 더 좋다.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다. 황태자 필리프(미남공)과 공녀 마르가레테가 그들이다. 그리고 당시 에스파냐에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장남 후안과 둘째 딸 후아나가 미혼이었다. 이들 두 제국은 겹사돈으로 유럽을 동서로 연결하며 경사를 맞는다.
미남공 필리프와 후아나 사이에 난 아들이 세기의 풍운아 카를 5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