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풍운아 카를 5세 2

by 박필우입니다

* 빈 오페라하우스




에스파냐와 합스부르크 이 두 제국은 국고를 낭비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보다는 현명하고 합리적이며 평화적인 방법을 선호했다. 동서냉전 시기에 미국의 군비증강정책에 휘말린 소비에트연방이 해체의 수순을 밟았듯, 군사력의 증강은 국고가 바닥날 수도 있었다.


제국의 굳건한 동지는 사촌보다 사돈이 더 좋다.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와 부르고뉴 상속녀 마리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다. 황태자 필리프(미남공)과 오스트리아 공녀 마르가레테가 그들이다. 그리고 당시 에스파냐에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장남 후안과 둘째 딸 후아나가 미혼이었다. 이들 두 제국은 겹사돈으로 유럽을 동서로 연결하며 경사를 맞는다.


에스파냐 후아나는 네덜란드로 시집갔고, 오스트리아 마르가레테는 에스파냐로 시집을 갔다. 겹사돈의 결속은 동과 서에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효과는 물론 세계가 제국의 눈치를 보는 형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세상에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스파냐 왕위 계승자 후안이 신방을 차린 지 여섯 달 만에 급서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에스파냐는 왕위계승을 두고 가계도가 얽히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공녀 마르가레테의 뱃속에 후안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절박한 희망에도 아기가 죽은 채 태어나고 말았다. 결국 마르가레테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재혼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1504년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가 53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으로 이베리아반도를 가톨릭국가 하나로 묶었고,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황금의 부를 축적했던 그녀였다. 왕위 계승 후안이 신혼 여섯 달 만에 죽었으니 결국 그녀 딸이자, 네덜란드로 시집간 후아나가 상속녀가 된다.


미남왕 펠리페 1세

이사벨 1세가 죽음으로써 남편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을 섭정을 펼쳤다. 그러자 그곳 대신들의 불만이 증폭된다. 이때 펠리페 1세가 후아나와 함께 에스파냐로 왔다. 장인 페르난도 2세와 본격적으로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카스티야 대신들은 강력한 드라이브를 일삼는 페르난도 2세보다 미남왕을 왕좌에 올렸다. 이로써 펠리페 1세는 에스파냐에서 왕위를 차지하게 되는 첫 번째 합스부르크 출신이 된다.


그에게 미남왕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사생활이 복잡했다. 곁눈질 하는 남편을 두고 질투에 가슴앓이 하던 후아나는 가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생긴 펠리페 1세의 운도 그리 길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권력을 다지기도 전인 1506년 9월, 부르고스에서 열병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미친 후아나가 독살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미남왕 펠리페 1세가 스물다섯 나이에 죽자 후아나 사이에 난 아들 카를에게 모든 권한과 재산이 돌아갔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왕가는 멀리 에스파냐까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는 명가에 날개를 단다.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견뎌라


펠리페 1세가 죽은 뒤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 정책은 시들지 않았다. 펠리페와 후아나 딸 네 명 중 첫째 엘레오노레는 포르투갈로 왕비로, 둘째 이사벨라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의 왕비가 되고, 셋째 딸 마리아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루트비히 2세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각 유럽의 왕실과 혼인을 맺어 존재의 가치를 드높였다.


장남 카를 5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때맞춰 1516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죽자 왕위 서열 1위는 광녀 후아나를 제치고 열여섯 살이었던 카를(Charles V)에게 모든 권한이 상속된다. 이로써 외할머니 이사벨 1세가 통치했던 카스티야이레온 왕국과 외할아버지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 왕국까지, 이베리아반도가 오롯이 그의 품으로 들어왔다. 훗날 에스파냐 국왕, 도이칠란트 국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왕가 오스트리아 국왕, 시칠리아 군주 등 이 외에도 그에 따르는 왕관과 직함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다.


32.카를 5세(93쪽)퍼블릭.png 행운의 사나이 카를 5세




카를 5세는 플랑드르 출신 측근을 대동한 채 에스파냐로 왔다. 1519년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까지 죽자 오스트리아 황제에까지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제 그가 지배한 땅은 프랑스만 제외하고 서유럽 전역과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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