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깐 행복, 늦지 않았어
가능하다. 행복이란 돈을 주고도 살 수 있다. 물질적 자기만족, 가진 자의 허세,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목, 아래로 내려 깐 시선, 굽어보며 한쪽 입 꼬리를 올리는 미소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 준다.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할 까닭은커녕 여유조차 없다. 쾌락의 향유를 위해서다. 물질의 위력은 비루한 과거를 가리고, 폭력적인 상처를 덮고, 내 후광을 밝게 비추고도 두툼한 지갑만큼 여유가 있다.
그런데 아뿔싸! 순식간에 고갈이 찾아오면서 쓰디쓴 뒷맛만이 여운을 남기며 질기게 따라 붙는다. 안타깝게도 행복의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았다. 행복도 시간이 재촉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자기 연민도 네거티브한 선처럼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늘이 데려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
슬픈 일이다. 그러나 절망한다고 해갈이 될까.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고 희망을 꿈꿀 수는 없을까. 얼마가 남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이라도 포기 할 수 없다. 후회만 남긴 인생으로 마감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매 순간 살아온 날들에 놓쳐버린 기회들을 생각하면 마냥 안타까움과 마주하곤 하지만, 회한의 감정을 다스리려면 미래를 그려내는 거다. 나는 여전히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이럴 때 정신승리법이 필요한 법이다. 모든 생명은 죽음에 포섭된다는 진리를 믿지만, 그렇다고 적멸감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다독인다.
마치 물 위에 뜬 배인 양 밀물이 오면 밀려오고, 썰물이 지면 물러가고, 물결이 잔잔해지면 멈추듯 마음에도 대자연과도 같은 질서의 아름다움이 필요 할 때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할 수만 있다면, 미움의 상처까지도 맑게 닦아야 한다. 우린 존재가치, 즉 그 자체로써 축복의 선물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걷는 순례자인지도 모른다. 순례란, 나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행복을 빌어주는 길이라고 한다. 늦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우리네 행복은 진정 그런 거라고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슬픔이란 매우 거추장한 정서다. 절망하고 좌절하기엔 내겐 시간이 얼마 없다. 적막하고, 나른하고 게으른 평온을 단호히 거부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pw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