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탈의 묘미에 대하여?
음악이 삶에 잊혔던 리듬을 깨우쳐 주었다. 여러 명이 함께 곡을 연주한다는 따위의 생각은 살아오면서 상상도 하지 않았다. 세월에 인생이 지배당하기 시작한 요즘, 정신도 따라서 삭막해지는 터라 더 진하게 느낀다. 나에게도 음률의 끼가 어느 정도는 잠재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나도 놀랄 때가 있다.
인연은 그분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여리고 연약하기만 한 영혼이라 삶이 지독히도 서러울 때가 있었다. 자기연민에 빠져 자독자박한 서러움을 받아들이며 삶과 대립한 채 버티고 있었다. 지친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처럼 정적만이 모두였다. 그때 십년지기인 양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분이 있다.
가느다란 인연의 끈이 핑계였다. 그리고 금쪽같은 시간을 오롯이 양분해 줬다. 까닭도 조건도 없는 너털웃음에서 가슴에 돋았던 설움의 가시는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전화를 기다리는 날이 많아지면서 깨달았다. 그간의 아픔이 환상이었고, 고통이 신기루였다. 진정 마법사다. 나보다 나를 더 나답게 보아준 이상한 눈을 가진 분이 분명했다. 그가 바로 40여 년 가까이 작은 출판사를 꾸려가다 몇 해 전에 작고한 구담(龜潭) 선생이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몇몇 인연을 더 맺을 수 있었다. 제각각의 인연부터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참 특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의 모임이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 꾹담, 그와는 반대로 입이 잠시도 쉬지 않아 만담, 너무나 사랑스럽게 팬플룻을 불어 주변을 압도하는 예술인 예담(모임 중 유일한 여자분), 그리고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지만, 가장 어리다고 필자가 청담(靑潭)으로 불리었다. 구담 선생이 작고하기 전 소설가, 시인, 팬플룻 연주가, 수필가 등 다섯이 모여 하나의 연못에 모였다. 그리고 막걸릿잔 앞에 놓고 세상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모임의 좌장은 인공청소기라는 새로운 별호를 획득한 구담 선생이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흡수해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구담 선생은 매화꽃 필 무렵 생을 마감했다. 온전한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가버렸다. 돌이켜보면 어떤 인연이 끝자락을 잡고 있어 이별을 경험케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황사 바람만 불면 귓가에 맴도는 음성이 언제쯤이면 사그라질지 걱정하였다. 해마다 환청처럼 울려댈 연분홍 치마 가락을 어쩌면 좋을까. 심판의 날을 기다리면서도, 모든 생명은 죽음에 포섭된다는 진리를 믿으면서도, 적멸감에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안다. 인생 2막이라며 좋아했는데, 모진 운명에 결국 순응하면서 꽃마차 타고 떠났다. 생전에 준비하던 묶음이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벌써 햇수로 3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분 음성도 기억도 세월에 유린당하는 중이리라.
이 말을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구담 선생의 부재로 인해 남은 우리 4담의 결속력이 느슨해질 때였다. 가고 없는 빈자리가 허전해 의기투합, 연주단을 발족하였다. 뭐 그렇다고 오케스트라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팬플룻, 기타, 색소폰 혹은 리코더나 에어로폰(전자 색소폰), 그리고 필자가 유일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는 하모니카가 화음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이름하여 ‘삑사리 연주단’이다. 영어로 Big, 넷의 선비가 모여 사(士, 四), 그리고 다스릴 ‘리(理)’로 해석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그리스 시대 신탁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승패를 좌우했다.
팬플룻 예담 선생은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국 콩쿠르 대상을 시작으로 각 지역으로 공연을 초대받아 다니는 특급 프로이니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소설가가 구성지게 불어대는 전자색소폰은 수준급이라 당장 거리공연을 하더라도 손색이 없다. 통기타도 그럭저럭 화음을 맞추는 데 문제는 필자가 부는 하모니카가 늘 삑사리, 즉 음 이탈을 일으켜서 진도에 발목을 잡곤 한다. 포기도 할까 했지만 이분들의 응원 덕분에 그럭저럭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격주로 금요일 저녁에 모여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기 일쑤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반주와 함께 해결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먼저 가신 분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각각 남남으로 얼굴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을 무심한 인연들의 모임이니 말이다.
하모니카에 가장 일반적이며 기본이 되는 C키, 긴 리드로 낮은음과 구성진 울림을 주는 G키, 그리고 제일 짧은 리드를 가진 F키 하모니카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악보를 설렁설렁 익힌 터라 음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따라가기 벅차다. 그나마 익숙한 곡이나 한 번쯤 들어본 음일 경우 기억에 악보를 덧대어 열심히 불긴 하는 데 박자를 놓치는 경우는 물론, 이것도 나이라고 숨이 가빠 리듬을 채우지 못할 때도 있어 죄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이 기다려진다. 사람이 좋아서고, 시간이 좋아서고, 음악이 좋아서이며, 뒤풀이가 신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모니카는 내 어린 시절을 소환했다. 나에게 하모니카와 인연을 맺어준 형 친구가 있었다. 매월당 김시습이 오세신동이라고 하더라만, 필자 또한 어린 시절에는 신동이라 불리었다. 만 여섯 살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 기대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정서불안(?) 장애였던 듯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부는 뒷전, 뛰어노는 데 정신이 팔려 집안을 실망시켰다. 그럭저럭 버티며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다.
둘째 형 친구가 서울에 다녀오면서 나에게 선물 하나를 건넸다. 처음 만져보는 하모니카였다. 이때부터 나와 하모니카는 한 몸이 되었다. 여름밤, 마을 텃밭이나 학교 담장 위에 올라가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동요를 불렀고, 마당 끄트머리 능금나무 가지에 나무 의자 걸쳐놓고 먼데 읍내를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하모니카는 내게 들어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럭저럭 잊히어 갔다.
그런데 결혼하고, 시골집 내 물건을 옮겨오면서 하모니카가 어느 품에 숨어서 따라왔던 것이다. 인연이 필연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둔 빨간 통 속의 하모니카는 새로운 하모니카를 구매하면서 이제 고물이 되었지만, 버릴 수 없었다.
음악의 3요소 선율과 화음, 리듬 혹은 장단이 있다. 선율은 긴장을 풀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화음에서 편안함과 포근한 감정을, 리듬이 주는 역동성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쉽게 동화되고, 인간관계를 어울리게 하며, 서로 다른 소리로 하나를 나타내는 이 조화로움이야말로 내 본래의 참으로 돌아가게 하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 불확실성의 시대에 불안이 주는 우울함을 건강한 혈맥으로 뛰게 하는 음악에 오늘도 빠져볼까 한다. 더 로즈, 라스트 모히칸, 어매이징 그레이스, 넬라 판타지아, 별빛 같은 사랑, 오빠 생각, 반달 등 속속들이 리듬과 선율 음과 뜻에 새로운 화음이 내 삶에 보약처럼 스며드는 경험을 한다.
인간과의 인연이란, 서로 목표하는 바가 다르고, 이해하는 능력과 감성 또한 차이가 나더라도 대화보다 장단으로 교감이 통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한 삶의 선율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하모니카를 챙기며 사뭇 지칠 수 있는 황혼에 물들어 가는 내 삶을 리듬으로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