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읽다

과거의 선택이 오늘을 증명하다

by 박필우입니다



꽃이 피고 황사 바람이 불더니 꽃이 졌다. 더위와 맞서는 매미의 처절함이 도심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점차 잦아드는가 싶더니 면경처럼 투명해진 하늘이 눅진한 더위를 견딘 사람들을 위로했다. 따라서 편율 된 공전주기에 한 치 오차도 없이 단풍이 들고, 북풍을 견디고 혹한의 겨울을 날 채비에 분주하다. 공원에 새벽 운동을 나선 사람들 옷차림도 두터워졌다. 노년이 그렇게 찾아왔다.


세상을 밝히려 안간힘을 쓰는 햇귀에 의해 시나브로 드러나는 널브러진 장난감, 일그러진 맥주 캔, 모래가 묻은 플라스틱 막걸릿병이 지난밤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땅 위 맨발 투혼 중년은 밤새 내린 서리를 모조리 녹일 태세다. 멋을 낸 여인이 경쾌하게 내딛는 걸음이 아름답다. 기실 움직일 때 몸매가 육감적인 까닭이다. 이를 부러워하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잰걸음으로 공원을 도는 아주머니 뱃살은 도무지 들어갈 기미조차 없이 단호했다.


새벽형 인간들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산책 겸 묵직한 아랫배를 해결하는 일석이조, 아니 배설의 쾌감까지 즐기는 일석삼조의 지혜를 지닌 이들이다. 종종걸음으로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산뜻해 기세가 넘친다. 때마침 태양이 아파트 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환희의 빛을 선사했다. 어둠을 틈타 배설시키고 간 흔적들마저 양지로 얼굴을 내민다. 다양한 암갈색 배설물이 당당하고, 우레탄 바닥에 가래침과 담배꽁초가 상처가 되어 붙어 있다.


쉼터 기둥에 붙은 시계가 7시 반을 넘기자 운동기기에 몸을 기억시키던 무리가 집으로 향한다. “늦게 가면 아침 못 얻어먹는다”라는 할머니 말이 이웃까지 서두르게 했다. 일출의 빛에 희망을 실은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저물어가는 황혼을 충분히 즐기라 응원했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절망뿐일지라도 처지를 긍정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가라 용기를 주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을 운명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라고도 하는 듯했다.


한결 한가해진 시공간, 공원도 휴식에 든다. 이때를 기회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쓰담쓰담 세수시키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떠오른 태양이 골고루 기운을 나눠 주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기운이 솟는다. 우레탄 바닥으로 포장된 뒤 몇 평 남지 않은 흙도 숨을 고르고 있다. 이를 깨우듯 약에 쓸 개똥 열 개나 주웠다고 외치는 청소 아저씨 소리가 하늘에 울리자 해가 급하게 구름 속으로 든다. 나무 의자에 앉아 넋을 놓던 할머니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간다.


아침을 해결한 할아버지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삼삼오오 모여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온 데 대한 보상을 장기와 바둑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 모두 콘크리트 정글에서 노년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처지가 행복의 척도였고, 가슴에 품은 담뱃갑이 훈장이라고 생각했다. 병상 신세 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깊은 고독감으로 마음에 소음을 몰아내는 이도 있다. 강력한 자석에 딸려가듯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순서를 기다리던 중에 애써 찾은 한가함이다. 현란한 허식의 공간이었더라도, 노예와 같은 몸이었다 해도 우리 때 삶은 순종이 미덕이었다며 퉤! 하며 바닥에 침을 뱉는다.


삶을 강요당한 채 살아온 데 대한 유일한 위로가 자위뿐이었다. 비록 폭력이 동반되었더라도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끝난 후,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향수를 잊지 못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과거가 화려할수록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리코더 불기, 노래 부르기, 체력이 허락만 한다면 등산이나 파크골프가 존재의 가치를 매일매일 증명해주고 있다. 백구두에 빛을 내고 콜라텍을 드나드는 굴곡진 춤꾼도 매양 한가지이리라.


고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짧은 초겨울 해가 서산머리에 걸렸다. 황혼의 낙조를 바라보는 노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더불어 선의만을 품은 양 낙일을 찾던 영혼들이 황혼빛에 물든 채 서둘러 둥지로 향한다. 돌아서는 발길, 서릿바람이 휘감는 세월의 단호함이 걸망처럼 걸려 흔들린다. 언제 어느 때 긴 겨울잠에 들지 모르지만, 내일 만나자는 희망과 격려가 서로에게 살아남으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왁자지껄하던 공원은 순식간에 고요에 잠겼다. 쉼터 정자는 겨우 한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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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저녁 이내가 깔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짙을수록 진실을 감추기에 좋다. 아이러니다. 어둠이 세상을 먹자 청춘들이 장악하면서 공원은 새로운 생기를 찾는다. 만용에 가까운 사춘기 용기에 혀를 차고, 짝을 찾는 청춘남녀 몸짓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자리를 지키는 노년도 있다. 운명을 거스르듯 청춘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주변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움에 움츠린다. 결국 망설임 없이 야생으로 돌아서며 집으로 향한다. 굽은 어깨에 달빛이 스며든다. 혹여 고색창연한 죽음을 떠올리지나 않을까. 청춘의 선택이 오늘을 증명하자 끝내 좌절하지나 않을까?


고개 숙인 할아버지 좁은 어깨에 달빛이 내려앉았다. 노년의 삶일수록 처한 상황에 맞춰 목표를 뚜렷이 하라고 다독인다.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목표가 있다면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고 흐린 달빛으로 간곡하다. 목표가 곧 삶의 가치라며 구름을 벗어난 별이 반짝이며 동조한다. 집으로 향하던 할머니가 놀이터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들자 얼굴에 난 주름이 빛을 먹어 사라졌다. 더불어 불빛을 받은 앙상한 나무의 잔가지가 실핏줄처럼 이어지며 칠흑 같은 허공에 에너지를 채워주고 있다.


오늘 어느 브런치 작가의 '노년연습' 글을 접했다. 긍정의 댓글도 달았다. 그렇지만, 제목만 보았을 때 노년은 반복할 수도 없고, 연습해서 되는 항목이 결코 아니다. 과거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까닭이다. 어영부영 노년이 되고 말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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