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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Aug 15. 2023

홀로 입원한 그의 사생활

온 가족이 동행해 입원을 오는 것이 우리네 관습이다. 엄마가 아프시면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식이 아프면 할머니까지 찾아와 손이라도 꼭 잡아주어야 정과 의인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며 병문안을 오는 문화가 사그라졌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가는 것이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좋다는 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전부터 병문안을 최소화하며 환자의 외부접촉을 줄이는 시도들이 있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라는 곳이었다. 간호와 간병을 통합한 이곳은 간호사 한 명이 보는 환자의 수가 일반 병동의 절반 정도이며, 간호조무사가 상주해 환자를 함께 돌보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자식 내외를 둔 시어머니, 미혼 남녀, 연고가 없는 노인 등 다양한 분이 선택 하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입원을 오신다. 필수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바로 입원과 퇴원을 하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같이 짐을 챙기고 인사와 안부를 나누며 오래 시간을 보내시곤 했다.



날이 꽤 더웠던 여름날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쯤이었다. 예정된 입원시간 보다 훨씬 여유 있게, 30대 후반의 남자분이 홀로 입원을 오셨다. 특별히 수척하거나 통증이 심해보이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 입원을 오신게 눈에 띄었다. 180이 넘는 큰 키에 작은 얼굴을 한 환자분은 외모가 수려했는데 미혼이라 보호자가 없다고 하셨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뭔지 모를 묘한 섬세함을 풍겼다. 더군다나 차트를 보니 다음날에 잡혀있던 수술은 치핵절제술이었다. (흔히 치질수술로 더 잘 알려져있다.) 위험하거나 어려운 수술이 아님에도 상급종합병원까지 오신점까지 의아한 것 투성이 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HIV(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 보균자셨다. 집 근처 병원에서 수술을 위해 혈액검사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되신 뒤, 소견서를 통해 큰 병원으로 입원을 온 경우였다.


HIV는 우리에게 에이즈의 원인으로 더 쉽게 알려진 바이러스다. 격리지침에 따라 보호장구를 착용하여 환자를 간호했다. 마침 다인실을 이용하셨고, 옆자리에 MRSA, VRE와 같은 접촉성 균을 가진 환자가 또 있어 눈에 띄게 보이지 않았던 점이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분은 타자에게 둘러 쌓여 날카롭게 반응하시곤 했다.


어떤 사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사생활이 버젓이 노출된 상황에서
 평소와 같은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를 사무적으로 대하려 애썼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주관이 비친다는 게, 평가받는 느낌이 들까 걱정했던 것 같다. 따뜻한 친절이나 호의도, 무거운 어색함이나 조심스러움도 모두 삼가며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와 동일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라포'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형성되는 상호 신뢰관계를 뜻한다.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에서 라포를 쌓기 위해서는 물론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전제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텐션이 낮은 노년층에게는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젊은 환자에게는 상세한 정보를 낱낱이 전달하는 것과 같이, 환자와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갑옷을 단단히 입고 잔뜩 경계를 한 그에게 애써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점이 오히려 라포 형성의 초석이 되었던 것 같다. 모든 환자가 잠들어 있을 새벽에, 마침 라운딩을 도는 내게 그는 고맙다고 했다. 자조적인 웃음과 더불어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 짧게 들었다. 민폐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시며 주변을 불편하게 했다 걱정하셨다.


아차 싶었다.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온 게 민폐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범위가 작은 수술이지만 위험성때문에 큰 병원에 오셔야 했던 건데.. 그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겠구나 어렴풋이 느껴졌다.



여초집단의 한 가운데 간호사로 살면서 다수 중의 한 명으로 누렸던 것들이 뭐였을까 돌아보았다. 인지하지도 못할 사소한 것들이 쌓여 편리함을 누린 적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한다. 해외여행 중 홀로 동양인이 되기도 하고, 이사를 오고 나서 동네사람들과 사용하는 말투가 다르거나 친구 따라 간 콘서트에서 혼자 떼창을 부르지 못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확실한  누구도 잘못한 게 없다는 점이다. 다수와 소수를,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큰 문제 없이 수술이 끝나고 환자 분은 다음날 서둘러 퇴원하셨다. 혹여 신체적인 건강이 회복한 대신 마음의 건강이 상하진 않았을까 오지랖이 불쑥 튀어나오려는 찰나에, 기분 좋게 웃으시며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나가셨다. 


홀로 입원오셨던 것처럼 당차게 혼자.
가벼운 목례와 함께 스치듯 건네는 '감사했습니다'  한마디가 유독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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