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87 댓글 1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안경을 돌려줘

by 카타리나 Mar 18. 2025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에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한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떤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고,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좀 아픈 아이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누구는 안 아프고 살아요? 아프다고 이런 행동을 해요? 어떻게 나한테 이걸 던져요?”

아이 엄마의 거듭되는 사과에도 할아버지는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신 모양이다.

“어르신, 저희 아이가 장애인이에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

할아버지는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고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좀 너그러워지셨다.

“아 그러세요? 엄마가 고생이 많네요. “

“어르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소란은 일단락이 되었고 아이와 엄마는 그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이와 엄마가 내린 역이 마침 내려야 할 역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 역에서나 내려버린 것이었는지 잘 모른다.

할아버지 일행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니 마주 앉아 있던 아이가 자기 외투를 할아버지께 던져 버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봉변을 당하신 할아버지가 노하신 것도 당연했고, 아이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한 아이 엄마도 참으로 짠하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연신 머리를 조아리던 아이 엄마가 눈에 밟혀서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처음 발령받아 왔을 때의 일이 갑자기 생각난다. 중학교1학년 과정을 맡게 되었는데 첫 수업시간에 한 남학생이 갑자기 내 안경을 벗겨서 우지끈 부러뜨려 버렸다. 부지불식 간에 당한 일이라서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한동안 멍하고 서 있던 기억이 있다. 뭐 이런 학생이 다 있나 싶어서 어이가 없고 화도 났다.

  "우리 학교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그냥 문턱세 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라던 옆 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어이없음'과 '화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날 오후에 새 안경을 맞추었다. 

그 후 한동안은 안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지하철에서 비슷한 인상착의의 사람만 봐도 안경부터 부여잡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 학교 내에서만 그렇지 밖에서는 그럴 위험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은 밖에서 만큼은 맘 편히 안경을 쓰고 다닌다.

학교에서도 한 지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먼저 위험을 인지하고 복도에서 덩치 남학생이 다가오면 복도 구석으로 붙어서 지나가는 식으로 알아서 피한다.

오늘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에게 갑자기 자기 외투를 던진 학생이 몇 년 전에 내 안경을 갑자기 벗겨서 부러뜨린 학생과 겹쳐 보이는 것은 아직도 내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우리 학생들 중에는 겉으로 보기에 장애인이라는 티가 전혀 없이 아주 늠름하고 잘 생긴 학생이 많다. 그래서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돌발행동을 했을 때 갑자기 봉변을 당한 쪽에서는 경찰에 신고까지도 불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곁에 보호자가 동행하고 있다면 대개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고 장애학생 혼자 있을 때에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문제가 해결된다.

학교에서야 어떻게든 장애 학생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어야 말이지!

조금 전 2호선 열차 안에서의 그 모자가 불편한 마음 때문에 아무 역에서나 내려버렸다면 도착지까지 가는 길이 참 서글플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너 선생님 너 안녕하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