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운영기

낮선 곳에서, 가족과 함께

by 나영온

홈스테이 운영기

— 낯선 곳에서, 가족과 함께


어쩌다 보니 가족 모두가 필리핀으로 가게 되었다.

기간은 4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충분히 낯선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홈스테이를 운영하게 되었다.

집의 규모부터 현실적이지 않았다.
방 여섯 개, 침대 열두 개, 마당이 딸린 집.


1411909119968.jpg 딸아이 학교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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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 번쯤 꿈꿔 보던 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곧바로 드러났다.

한국에서 신청했던 홈스테이 학생 여섯 명 중
네 명이 오지 않았다.

그로 인한 경제적인 타격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다.


인건비를 줄여야 했고, 현지 직원 문제도 잦았다.

집 안의 물건들이 자꾸 사라졌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거의 혼자서 집안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청소, 세탁, 아이들 식사 준비, 장보기까지.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손에 익어갔다.

음식을 하다 보니 식단을 짜게 되었고, 새벽이면 장을 보러 나섰다.

사진을 찍어 한국에 있는 아이들 부모님께 보내면,
그제야 안심하는 답장이 왔다.

그 반응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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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실제 식단


치안은 늘 긴장의 대상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소매치기가 걱정됐고,
뉴스에서 들려오는 범죄 소식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늘 붙어 다녔다.
하루 24시간을 떨어지지 않고 함께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부부로서도 조금 달라졌다.

함께 걱정하고, 함께 버티고, 함께 결정했다.

아이들도 그 곁에서 자랐다.

아빠에게는 수영을 배우고, 수학을 배웠다.
엄마에게는 국어를 배우고, 한국사를 배웠다.

그 시간은 한국에서는 쉽게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나는 한인학교 유치부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 집에서는 영어를 쓰는 아이,
부모의 문화가 서로 다른 아이들.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고,
훈육의 기준도 각각이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말과 행동이
어떤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가르치기보다 더 많이 살폈다.

이 아이가 무엇을 모르는지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먼저 보려고 했다.

문화는 다르고, 언어는 서툴렀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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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함, 기다려주는 어른, 혼나기보다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

그 경험은 홈스테이에서의 생활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집에서도, 교실에서도 나는
‘잘하는 어른’보다 ‘조심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돈보다 다른 것을 배웠다.


부모와 자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의지하는 법.


모든 것을 부모에게서 보고 배우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큰돈을 벌어 돌아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오래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낯선 나라에서 삶을 다시 꾸리며 알게 되었다.


직업은 환경이 바뀌면 형태를 바꾸지만,
가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남는다는 걸.




�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것들

나는 그곳에서 직업보다 먼저,
가족으로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숨결

낯선 곳에서
가족으로 살아내는 법을 배운 뒤,
나는 다시 ‘일’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이야기는
그 시간을 지나
어떤 어른으로,
어떤 전문가로
살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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