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밑진 장사를 한 적이 있을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by 샤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사진출처: tvN 홈페이지)
장사꾼이 장사하다 보면, 밑질 때도 있는 법. 내 올해 장시 밑졌다 생각하면 그뿐이다. 살면서 밑진 장사 한두 번하는 거 아니니, 넘 신경 쓰지 말고 받아.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3회 중 은희가 한수에게 2억 송금 후 보낸 문자-







2022년에 방영된 우리들의 블루스. 20부작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모두 연결 돼있지만 매회마다 그때의 주인공이 바뀐다. 제일 처음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한수와 은희. 어린 시절 동창이었던 그들은 똑똑했던 한수가 서울로 유학을 가면서 만나지 못하다가 기러기 아빠이자 은행지점장인 한수가 제주 고향인 은행지점장 자리로 발령받아 내려오면서 다시 만난다. 한수는 은희의 첫사랑. 하지만 한수는 지금 돈이 없다. 골프 유학을 간 딸의 뒷바라지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당겨서 사는 게 팍팍하고, 지금 당장도 딸 보람의 골프 유학 비용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은희와 1박 2일 여행을 간다. 은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은희가 가진 한수에 대한 옛정을 이용하려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결국 한수는 끝까지 은희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지만, 다른 동창생들로부터 온 문자로 한수의 처지를 알게 돼버린 은희. 한수는 은희를 남겨둔 채 홀로 돌아오고, 은희는 한수에게 돈을 보낸다. 위의 문자를 남긴 채.


한수와 은희의 동창생들은 한수를 욕한다. 한수가 은희의 옛 추억을 빌미 삼아 돈을 빌리려 했다며. 하지만 은희는 이런 동창생들을 나무란다. 한수 뒤에서 뒷말하는 우리가 더 나쁜 친구들이라며. 우리야말로 진짜 한수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있냐며. 그리고 올해 장사는 밑지는 장사라 생각하면 된다며 2억을 보내는 은희. 그리고 사실 욕하는 친구들도 은희 옆에서 계속 돈을 빌렸단 친구들이다.


이 대사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 나는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밑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고 있었는지.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가족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준 만큼 돌려받기 위해 겉으로는 안 그른 척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얼마나 재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은희 말대로 이렇게 계산하면서 살아도 밑지는 적이 한두 번이던가.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쿨하게 '이번에는 밑지는 장사할 테니 맘 편하게 너 해!'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또 쉽지 않다. 은희처럼 난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기에. 통 큰 사람은 타고 나는 건가 보다. 이런 은희도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또 마음이 좁아지긴 하지만, 결국 풀리긴 한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이쪽 면에서는 쿨해도 저쪽 면에서는 또 좁은 면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님은 이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 같다.


한수는 결국 은희에게 받은 돈을 돌려준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문자를 남긴다.


너한테 왜 처음부터 돈 빌려 달란 말을 안 했냐고? 세상 재밌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너한테, 매일 죽어라 생선 대가리치고 돈 벌어서 동생들 뒤치다꺼리나 하며 사는 너한테, 기껏 하나 남아 있는 어린 시절 나에 대한 좋은 추억, 돈 얘기로 망쳐놓고 싶지 않았어. 그래도. 그래도. 나 정말 미안하다 친구야.. 미안하다..


한수는 그 짧은 시간 제주에 있으면서 보았던 거다. 은희가 자신이 제주를 떠나왔던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주에서 함께 한 동창들조차 깊게 헤아리지 못한 은희의 마음을 한수는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차마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 아무리 자신에게도, 가족들에게도 그 2억이 정말 절실했더라도 한수에게는 어릴 적 소중한 친구인 은희의 마음도 소중했던 거다. 돈보다 더. 사실 이 문자를 받은 은희가 2억을 보내지만 한수는 다시 2억을 돌려보낸다.

그러고 보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뭐 다들 이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하지만 추억은 사라지만 정말 끝인 것 같다. 다시 붙일 수가 없다. 특히 어릴 때 나눈 추억은.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 청춘 때 만들어진 추억이 그리운 것은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다시는 그 추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한번 깨진 그 추억은 다시 되돌리지 못한다. 그 추억 속의 친구들도,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그 시절 내 모습도. 그러므로 우리는 돈보다 추억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루하루 바쁘고, 때로는 치열하고, 가끔은 죽을 것처럼 힘든 세월이지만, 이따금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이 있다면 또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잘 간직하자. 깨지지 않도록. 가끔은 밑지더라도, 손해 보더라도 '100세 인생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면서 그렇게 살아보자. 그러다 보면 또 누군가가 반대로 나에게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세상은 돌고 도는 거니까.


은희야. 돈 다시 보냈다. 살면서 늘 밑지는 장사만 한 너에게 이번만큼은 밑지는 장사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니 돈은 다시 보냈어도 니 마음은 잘 받았다. 은희야. 난 이번 제주 생활, 진짜 남는 장사였다. 너, 인권이, 호식이, 명보. 추억 속에만 있던 그 많은 친구들을 다시 다 얻었으니.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중 한수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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